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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

논술 : 경제민주화  

조지 레이코프는 그의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를 통해 ‘프레임’의 중요성을 말한다. 인지과학의 측면에서 봤을 때, 선택한 단어가 주는 이미지나 연상이 대중에게 프레이밍 되어 심리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시정권이 들어섰을 때 그들이 연설에서 꺼낸 단어는 ‘세금 구제’였다. 불우한 누군가를 ‘구제‘하는 주체는 강하고 정의로운 영웅이고, 이를 방해하는 세력은 영웅을 위협하는 악당으로 비춰진다. ‘구제’라는 한 단어가 이처럼 사람들이 머릿속에 무의식적인 프레임을 형성한다.

최근 정치권에서 대선을 겨냥해 들고 나온 ‘경제민주화’ 역시 조지 레이코프가 말한 프레임 형성의 일환이다. 물론 경제민주화라는 단어는 수정헌법 119조 2항에도 나오지만, 의미가 명확하지 않아 어떤 곳에선 경제적 평등으로, 어떤 곳에선 정부의 시장개입 필요성으로, 또 어떤 곳에선 기업의 경제활동 자유보장으로 마치 장님 넷이 코끼리 더듬듯 자의적으로 해석해왔다. 이것이 한국 자본주의 사회에 재등장함으로써, 그동안 소수 대기업들이 독점적으로 잠식했던 시장구조를 재편해 서민경제를 살리고 양극화를 해소한다는 의미로 프레임 되었다. 일반적으로 민주화는 분배적 느낌이 강하며, 이를 반대하는 세력은 상대적으로 독점적인 이미지로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주장하는 일련의 경제 민주화가 정말 진정한 의미의 민주화를 의미하는지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이미지가 아니라 그 세부 정책을 면밀히 따진 후 판단할 일이다. 현재 기형적으로 양극화 된 성장과 분배의 구조를 해결하려면 흔히 재벌이라고 불리는 대기업들의 경제활동에 제재를 걸어야 한다. 현 정부 들어 수정된 친(親)대기업 위주 정책들로 인해 중소기업과 서민 경제는 열악해지고 재벌들만 부를 축적했기 때문이다. 이 점은 특히 금산분리법과 순환출자방식에서 드러난다.  

먼저 금산분리법을 현행대로 유지한다는 것은 대기업이 은행을 사금고화(化)할 가능성을 여전히 안고 가겠다는 소리다. 금융과 산업을 분리하여 기업과 은행의 도덕적 해이를 막고, 기업의 은행 지분율을 제한하여 서민의 재산을 기업의 대출로부터 안전하게 지키려는 것이 금산분리법의 골자인데 이 법을 현 정권 들어와서 대폭 완화했다. 이 현행법을 그대로 유지하면 은행은 더 이상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제 1 금융기관일 수 없으며, 대기업의 자본 운용에만 유리해질 것이다.

또한 기존의 순환출자방식 역시 대기업의 몸집만 부풀려준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꼬리에 꼬리를 문 투자 구조에서 마지막으로 투자받은 기업이 다시 대기업에 투자를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대기업의 자본만 늘어날 뿐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경제 전문가들에게 지적을 받아온 현 순환출자방식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은 이러한 문제를 방관하겠다는 뜻이다. 경제의 양극화를 해소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를 줄이겠다는 ‘경제 민주화’가 과연 앞서 설명한 두 정책에 아무런 제재 없이 가능한 일인가.

이러한 관점에서 두 정책의 수정이 없는 경제 민주화란 실상 재벌의 독점성장을 외면하는 허울뿐인 프레임일 뿐이다.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을 제한하는 등의 일부 제재로는 될 일이 아니다. 근본적인 순환출자방식과 금산법을 바꾸지 않으면 중소기업에 행사하는 대기업의 영향력은 멈추지 않으며, 이들의 몸집이 더욱 커질 숨통을 트여주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 이 공약이 포퓰리즘이라는 비난 역시 이와 같은 솜방망이식 민주화 정책들 때문에 제기되고 있다. ‘경제 민주화’라는 전략적인 프레임에서 벗어나 그 본질이 정말 내수시장과 서민경제를 살리려는 목적에 부합하는지 면밀히 따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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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피드백 : 경제 관련 글에서 정치적 용어 사용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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