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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ner/M to M

[영화] 언더 더 스킨, 낯설게 바라 본 약자

 

 

* 스포주의 *


언더 더 스킨 (2014)

Under the Skin 
5.5
감독
조나단 글래이저
출연
스칼렛 요한슨, 안토니아 캠벨-휴즈, 폴 브래니건, 로버트 J. 굿윈, 마이클 몰랜드
정보
SF, 드라마 | 영국 | 108 분 | 201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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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정체불명의 외계생명체가 지구에 도착했다는 것을 암시하면서 시작된다. 살해된 여성의 옷으로 갈아입은 '로라'는 트럭을 몰며 스코틀랜드에서 먹잇감을 물색한다. 로라가 받은 구체적인 지령같은 건 오로지 영화 속에서 암시로만 나타난다. 길을 묻는 핑계로 남자들의 신상을 물어보며 로라는 서서히 인간 사회를 탐색한다. 그리고 낙점 된 남자는 로라에게 이끌려 수상한 공간에 들어오는데, 앞뒤 맥락을 무시하고 펼쳐지는 어두운 이공간은 일종의 은유같다. 로라에게 시선이 팔린 나머지 자신이 점점 밑으로 꺼지는 것도 모르는 남자들은 마치 로라의 뱃속에 들어온 먹잇감을 연상시킨다. (여기까진 <스피시즈>를 철학적, 문학적으로 재해석한 버전 같다.)  

 

큰 변화는 로라가 안면기형의 남자를 만나면서부터다. 사실상 이 만남을 계기로 영화의 초반부와 후반부가 나뉘는데, 지금까지 남성을 먹잇감으로 보던 로라가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는 계기다. 초반부가 외계생명체로서의 로라였다면, 안면기형 남자를 만난 후 로라는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인식한다. 사회적 소수인 안면기형의 남자는 로라를 마찬가지로 소수이자 약자인 여성의 위치로서 각인시키고, 같은 이유로 로라는 안면기형의 남자를 이전 남자들처럼 삼킬 수 없다. 즉 여기서 안면기형의 남자는 존재 그대로 사회적 소수로서 기능하는 한편 '로라'의 존재는 외계생명체의 모습을 빌려 여성으로서의 사회적 약자 딜레마까지 포함하는 '구조화된 부재'다. 이때 도망치던 안면기형 남자를 로라의 조력자ㅡ로 암시된 남자 외계인ㅡ가 잡아 죽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안면기형 남자와의 만남 후 로라는 거울 속 자신의 알몸을 신기하게 쳐다본다. 그리고 이때부터 남자를 먹잇감이 아닌, 정상적인 성관계를 맺을 대상으로 취한다. 외계생명체에서 인간 여성으로의 변화를 받아들인 순간부터 로라의 상황은 암울해진다. 로라가 먹잇감을 찾아 홀로 여행하는 외계생명체에서 벗어나 단지 혼자 있는 여성이 됐을 때, 낯선 남자는 순진한 먹잇감이 아니라 위협적인 존재로 돌변한다. 사람을 찾아 도시를 떠돌던 로라는 이제 아무도 없는 숲속 산장에서 안정을 느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숲속 관리인에게 겁탈 당할 위기에 처한다.

인간 여성의 껍질을 벗은 로라는 여전히 지구상에서 외로운 소수이자 약자인 외계생명체일 뿐이다. 숲속 관리인이 끼얹은 기름에 의해 불에 타 죽는 순간까지. 비명 한 번 지르지 않고 재가 된 로라의 흔적에서 외로움이 극대화된다. 관객은 외계생명체의 시선을 따라 인간 사회를 낯설게 바라봄으로써 로라가 최후에 느꼈을 외로움을 환기한다. 인간 세상에서 배척된 외계생명체로서, 나아가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없던 사회의 약자로서의 외로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