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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ner/M to M

[영화] 무서운 집은 무서운 영화다

양병간 감독의 영화 무서운 집을 봤다. 조악한 포스터만큼이나 충격적인 본편으로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던 그 영화다. 시나리오, 촬영, 편집, 의상 등 제작에 필요한 역할 대부분을 감독 혼자 도맡았으며 등장인물은 중년의 여성 단 한 명뿐이다. (감독이 남편 역할로 잠깐 나오긴 한다) 투자나 배급사도 따로 없는, 그야말로 감독과 배우가 맨몸으로 부딪친 영화다.

여러 경우의 수가 있지만 아마 이 영화를 본 관객에게서 대부분 터져나오는 반응은 황당함일 것이다. 이사 왔다는 설정을 감안해도 사람 냄새라곤 조금도 나지 않는 집안과 마치 대학시절 핸디캠으로 찍은 듯한 노이즈, 쩌렁쩌렁 울리는 주인공의 발연기, 어릴 적 전래동화 만화에서나 듣던 음향 효과. 무엇보다 이 자신 있는 롱테이크는 뭐냐. 그런데 이 영화, 다른 의미에선 충분히 무섭다.

무서운집에서 반복적으로 채택하는 감정이 뭐냐고 묻는다면 바로 지루함이다. 미쟝센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구도와 롱테이크..., 반복적인 동작 등은 지루함을 부른다. 가장 지루한 부분은 구윤회가 반나절동안 김장을 하고 요리를 하고 청소를 하는 장면이다. 딱히 전개에 필요하지 않은데도 이 장면들을 거의 무편집으로 보여준다. 멍하니 보다보면 장르를 잊어버릴 정도다. 반복적이고 지루한 집안일. 남편도 출장에 갔는데 친구를 만나거나 하다못해 티비를 보는 등 본인의 취미생활을 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그나마 구윤회의 아이덴티티가 묻어나는 부분은 문제의 노래 장면인데, '즐거운 나의 집'과 '베싸메무쵸'를 열창하는 장면에서 그녀는 정말 신이 나 보인다. 그런데 이 장면들은 앞뒤 내용과 상관없이 쌩뚱맞게 등장하여 급기야 기괴하다는 인상을 준다.

보는 사람조차 지루한 집안일은 그녀의 일상이고, 그녀가 해야 하는 가사노동이다. 집안일은 휴일이 없다. 물론 퇴근도 없다. 심지어 매달 월급이 나와서 돈으로 보람을 느끼는 일도 아니다. 수고했다는 말조차 들을 기회가 없는, 그러니까 정말 지루한 일이다. 이런 집에 그녀는 갇혀 버렸다. 출장가는 남편을 배웅하며 건물 출입구를 봉쇄해버렸고, 지하 스튜디오에서 귀신을 봤을 때도 그녀는 출입구 앞에 왔음에도 바깥보다 집안으로 도피한다.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귀신을 찾으러 문을 여닫거나 하는 장면들은 마치 그녀의 집안일처럼 지루하고 끝없이 반복적이다. 이렇게 보면 단지 마네킹 귀신만 이상한 게 아니라 그녀와 그녀의 집 자체가 귀신의 소굴인양 이상해 보인다. 안에서 문을 잠갔으니 남편이 돌아와도 그녀 없이는 문을 열 수 없다. 마치 영원히 이 반복적인 행위들이 계속될 것 같은 집, 정말 무서운 집이 아닌가.

이런 관점에서 보면 마네킹 귀신은 제법 흥미로운 존재다. 구윤회가 직접 조립하고 귀신 분장을 한 마네킹은 지하 스튜디오에, 결혼식 복장을 한 신랑신부 마네킹과 떨어져 우두커니 앉아 있다. 영화 초반부 구윤회는 귀신 분장을 한 마네킹과 함께 사진을 찍는다. 신랑신부 마네킹은 눈코입이 그려져 있는 반면 귀신 마네킹은 몽달귀신마냥 이목구비도 없어 표정을 알 길이 없다. 이후 벌어지는 귀신 마네킹의 활약에 비하면 화려하게 차려입은 신랑신부 마네킹은 오히려 영화에서 시종일관 배경으로 기능할 뿐이다. 구윤회가 곱게 입은 신랑신부 마네킹은 저만치 냅두고 귀신 마네킹과 사진을 찍은 이유는 뭘까. 일반적으로 행복을 상징하는 신랑과 신부 마네킹이 정말 마네킹처럼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반면, 우중충한 귀신 마네킹이 마치 사람처럼 움직이고 낑낑대기까지 하는 모습은 묘한 아이러니를 낳는다. 구윤회가 널어놓은 빨래, 설거지를 한 주방, 청소를 한 거실 등 곳곳에 신출귀몰하는 마네킹 귀신은 마치 이 무서운집에 사는 지긋지긋한 집안일 그 자체 같다.

지하 스튜디오에서 마네킹 귀신과 사투를 벌인 구윤회는 마침내 승리하고 그곳에서 빠져나가고자 하지만, 결국 마네킹 귀신의 손에 목을 잡히고 만다. 그 후 날이 밝아 남편으로부터 온 전화를 받은 구윤회는 뒤를 돌면 귀신 마네킹이 되어 있다. 즉, 그녀는 결국 집안일이라는 무서운 것으로부터 해방되지 못하고 아예 동일화 되어버린 것이다. 베사메무쵸를 열창하던 그녀가 아무 표정없는 마네킹이 되어버린 모습은 왠지 모르게 서글프다. 꿈보다 해몽일지 모르나, 이 영화는 정말 무서운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