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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der/영화식사

[ 영화식사 014 ]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 영화식사 014 ]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ㅡ 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방법>

 

 

언젠가 SNS에서 떠돌던 글 중 인상 깊었던 문장이 있다. "나는 ~란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형식으로 쓰여진 일종의 페미니즘 선언문이었다. 그 글이 쓰여진 배경은 자세히 모르겠지만 그 중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사람의 적이 사람일 뿐이다"는 문장이 오랫동안 뇌리에 남았다. 그 문장이 확 끌렸던 이유는 그 당시 내가 회사생활에서 사소한 골머리를 앓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천성이 소심하여 항상 새로운 조직에서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는데, 가장 어려울 때가 이른바 '기싸움'이었다. 같은 동기였던 그 여자애는 남들이 알아차리기 어렵지만 듣는 당사자는 기분이 꽁할 만큼의 기싸움을 걸곤 했다. 보통 이렇게 말하지 않나. '남들은 모르지만 당사자는 기분 나쁜 태도'라고. 내가 조직에서 튀는 사람도 아니고 오히려 눈에 안 띄는 축에 속하는데 왜 그렇게 시비를 걸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아무튼 굉장히 사소한 부분에서 그 애는 내게 미묘한 시비를 걸었고, 화를 내면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는 입장이라 집으로 가는 길에 분을 삭히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애는 사실 예전부터 종종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생활, 그 외에서도 상대방을 기선제압하는 것이 목적인 듯한 사람 말이다. 이런 싸움에 영 젬병인 나는 그럴 때마다 피하거나, 무시하거나, 속으로 꽁해 있을 뿐 드라마에서처럼 화끈하게 해결할 수 없었다. 그 과정을 몇 번 반복하다보니 인정하기 싫어도 여자들 사이엔 이상하리만치 특정 동성에게 공격적인 여자가 존재하며, 상대방은 응하지도 않은 기싸움을 시전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던 중 SNS에서 그 문장을 보고 만 것이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사람의 적이 사람일 뿐이다. 그 문장은 받아들이기 어려우면서도 너무나 끌리는 정치적 올바름을 갖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여자들의 기싸움에 대해 내가 다시 생각해 볼 계기가 된 셈이다. 기싸움, 구체적으로 타인을 내 아래에 두고자 하는 서열 싸움이 비단 여자들 사이에서만 존재하겠는가. 단지 조직에서 이성보다 동성끼리 부딪힐 확률이 높으며, 동성끼리 유대가 깊은 만큼 그 반작용도 있는 게 아닐까. 또한 동성에겐 기싸움으로 보이는 태도가 이성에겐 다른 식으로 변질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중요한 건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함의하는 젠더적 편견과 깎아내림이다. 무리 중에 여왕이 되려는 성향과 시녀가 되려는 성향이 비단 여자에게만 생물학적으로 장착된 DNA겠는가.

린제이 로한, 레이첼 맥아담스, 아만다 사이프리드 등 지금은 헐리우드의 셀러브리티인 세 배우가 열연한 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2004)은 지금도 하이틴 무비의 전설로 평가받는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아프리카에서 자유분방하게 성장한 케이디(린제이 로한)는 일리노이즈의 고등학교로 전학 오면서 아프리카와는 또 다른 학내 생태계를 체험한다. 학내 퀸카로서 여왕으로 군림한 레지나(레이첼 맥아담스)와 그 친구들이 전교생의 학교생활을 주무르는 것을 본 케이디는 이를 야생의 세계에 비유한다. (배우들이 전부 야생동물처럼 포효하는 장면이 압권이다) 하이틴 무비 자체가 여학생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게 일반적이지만 <퀸카로 살아남는 법>은 10대의 로맨스보다 동성 간의 권력을 둘러싼 알력과 신경전을 다루고 있어 더욱 호응을 얻었다. 남자주인공 애런(조나단 베넷)은 청일점인 것과는 달리 영화의 갈등과 해결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만약 이 영화가 한 남자를 둘러싼 여자들의 치열한 싸움이었다면 하이틴 무비로서 오랫동안 사랑받지 못했을 것이다. 레지나와 케이디의 기빨리는 신경전이 재미있는 이유는 "여자의 적은 여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학내 권력을 쟁탈하기 위한 과정이 상대적으로 남자 배우가 출연하는 것보다 보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결말의 오글거림을 참는 것은 보는 사람의 몫이다.

 

 

< 퀸카로 살아남는 법 > (2004)

린제이 로한주연의 헐리우드 틴에이저 영화. 원제는 Mean girl. 미국 로스엔젤레스기준 2004년도 04월 19일에 개봉하였다. 한국에선 4월 30일에 개봉.

지금은 각종 가쉽, 사건사고로 헐리웃에서 그야말로 밑바닥까지 추락한 린제이 로한을 최고의 아이돌스타 자리에 올려놓은 영화. 린제이 로한이외에도 레이첼 맥아담스나 아만다 사이프리드같은 한국에서도 유명한 배우들이 조연급으로 출연하기도 하였다.

론 마이클이 제작에 참여하였다. 그런 이유로 SNL에 출연한 적이 있는 배우들이 영화속 조연으로 우정출연 하였다.

저예산 틴에이저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켜 월드와이드 기준 약 1억 2900만 달러의 수익을 벌어들였다. 특히 북미권에서는 반응이 좋아서 8600만 달러의 수익을 기록. 손익분기점을 가뿐히 뛰어넘는 흥행성적을 기록하였다.

출처 : 나무위키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