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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der/영화식사

[ 영화식사 016 ] 의외로 필요할지도 몰라, 감정노동

[ 영화식사 016 ] 의외로 필요할지도 몰라, 감정노동

ㅡ영화 <혼스> (Horns,2013)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은 대부분 이미 영화계에서 명실상부 입지가 든든해서, 차기작이 기대되는 정도지 잘되기를 응원하고 말 것도 없다. 그 와중에 개인적으로 응원하는 유일한 배우가 있으니 바로 다니엘 레드클리프. 전세계 주목을 받으며 어린 나이에 ‘해리포터’라는 무거운 역할을 10년이 넘도록 소화해낸 다니엘 레드클리프는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의 완결편을 찍은 이후, 지금도 배우로서 열심히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다만 유명세에 의지하지 않다보니 찍는 영화들의 퀄리티가 들쑥날쑥하다. 영화 <혼스>도 그 들쑥날쑥한 커리어 중 아쉬운 작품에 속한다. 스티븐 킹의 아들 조 힐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의 감독이 <피라냐>(2010)일 때부터 슬픈 예감이 들었다. B급 장르를 감안해도 쉽게 예상되는 스토리와 반전이 아쉽지만, 오로지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며 성장하는 다니엘 래드클리프의 열연 덕분에 흐뭇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뿔’(horns)의 존재가 흥미롭다. 애인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마을의 공공의 적이 된 이그(다니엘 래드클리프)는 어느 날 자신의 머리에 돋아난 두 개의 뿔을 발견한다.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병원에 갔지만 의사를 포함해 마을 사람 누구도 이그의 뿔을 알아보지 못한다. 더욱 더 경악할 일은, 뿔이 돋아난 이그를 본 사람들 모두 마치 홀린 듯이 내면에 숨겨왔던 욕망을 고백한다는 점이다. 이그를 진찰한 의사는 갑자기 간호사와 섹스를 하고 싶었다며 묻지도 않은 말을 마치 고해성사하듯 줄줄 읊는다. 이그의 살인 혐의에 대해 경찰에 거짓증언을 한 간호사는 사실 거짓말을 해서라도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그가 절망에 빠져 부모를 찾아가자, 지금까지 내내 이그의 편을 들어주던 부모로부터 “사실 너를 못 믿겠다”, “네가 집에 오는 게 싫다”는 진심을 듣게 된다. 원인은 모르겠지만 이그의 뿔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숨겨왔던 욕망과 행동을 유도하는 것이다.  

 

 귀여우면 지는 거다

 

이그의 머리에 돋아난 두 개의 뿔은 진짜 살인범을 잡기 위한 징벌의 뿔일까? 혹은 알고 싶지 않던 진실을 보여주는 악마의 뿔일까. 서비스직에서 감정노동은 부정적인 의미지만 일상생활에서도 인간관계는 어느 정도 감정노동을 필요로 한다. 특히 가까운 사이일수록 감정노동은 더욱 어려운데, 밖에서 얻은 스트레스를 가족에게 풀 때마다 가까울 수록 솔직해야 한다는 말은 거짓말 같다. 귀찮고 피곤하더라도 밥상 앞에서 “맛있다”고 한마디 건네는 노동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그의 뿔은 창백한 진실을 알려주는 악마의 뿔일지도 모른다.  

만약 내 머리에도 뿔이 생겨서 부모님과 마주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네가 백수라서 정말 한심하다”, “키워놓은 보람이 없구나” 이런 말을 면전에서 듣게 된다면. 아! 생각만 해도 슬프다. 진실은 아름답고 끔찍한 것이라던 해리포터의 덤블도어 말이 떠오른다. 그런데 아름다운 진실이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영화 <혼스>(2013)

알렉산드르 아야 감독의 다크 판타지 스릴러 영화. 2010년 출간된 조 힐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원작소설은 인간의 가장 추악한 욕망을 밑바닥까지 해부하며 사랑과 구원을 가장 대담한 방식으로 일깨웠다고 평가받았다.

자료 참고 : 네이버 영화 매거진 '다니엘 래드클리프가 소개하는 강렬한 판타지 스릴러 [혼스] 완전 분석'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