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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der/영화식사

[ 영화식사 017 ] 알면서도 빠지는 걸 어쩌겠어요

[ 영화식사 017 ] 알면서도 빠지는 걸 어쩌겠어요

ㅡ 영화 <내 연애의 기억>

 

네이트판이나 여성 커뮤니티의 단골소재는 단연 나쁜 남자다. “이 사람과 헤어져야 할까요?”를 주제로 한 고민글이 주기적으로 올라온다. 술버릇 안 좋고, 여자 밝히고 폭력에 욕설까지. 명명백백히 헤어져야 할 남자임에도 정말 헤어져야 하는지 묻는 이유가 뭘까. 본인이 스스로 판단하기보단 남의 의견을 들어볼 만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술버릇 안 좋은 것만 빼면 참 좋은 사람이에요”라고 하지만, 이미 술버릇이 좋지 않다는 것부터 좋은 사람이 아니다. 이처럼 남의 연애엔 냉정할 수 있는 심리 때문에 고민글을 올리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 나쁜 남자 왜 만나냐고 하지만 그게 막상 내 연애가 되면 그렇게 무 자르듯 간단한 일이 아니다. 만나보니 정말 그렇더라. 사람이 사람에게 자석처럼 끌리는 극은 어디에 달린 건지, 그의 나쁜 면을 알면서도 혹은 잘 모르면서도 반신반의하며 사랑하게 된다. 그 중엔 언젠가 변할 거라는 믿음도 있고, 모든 단점을 초월할 정도로 깊은 사랑이라는 확신도 있다. 전부 허공에 팔을 뻗는 허망한 손짓이다.  

영화 <내 연애의 기억>(2014)은 좀 더 극단적인 상황을 제시한다. 더할 나위 없이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던 나의 연인이 사실 살인범이라면? 남이라면 당연히 펄쩍 뛰며 헤어지겠지만 그 상황에서도 헤어짐을 고민하는 것이 바로 연애다.

비슷한 설정으로 우디 앨런의 <스쿠프>(Scoop, 2006)가 있다. <스쿠프>가 살인범과의 연애를 희극적으로 그려냈다면 <내 연애의 기억>은 로맨스에서 스릴러로 갑자기 장르가 바뀌는 당황스러움을 선사한다. 은진(강예원)은 연쇄살인범인 애인 현석(송새벽)으로부터 감금되었다가 도망치는 와중에도 현석과 함께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살인범이 쫓아오는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애타게 부르는 그의 목소리가 은진의 발목을 붙잡는 것이다. 탈출할 기회를 두고도 이 사람을 버려야 할지말지 고민하게 만드는 건 바로 연애의 기억. 영화 클라이막스에서 은진의 도망치는 모습과 정반대로 따뜻한 색감의 과거가 교차되는 장면은 그 상황에서도 망설이는 은진의 갈등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만약 은진에게 좀 더 시간이 있었다면 그녀 역시 헤어지기에 앞서 고민글을 올렸을지도 모른다. “남자친구가 살인범인 점만 빼면 참 좋은 사람인데, 헤어져야할까요?”

 

 

 

 

< 내 연애의 기억 > (My ordinary love story, 2014)

이권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 2014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페막작으로 상영되었다.

자료 참고 :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