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Order/영화식사

[ 영화식사 019 ] 따라 하기엔 너무 어려운 명대사

[ 영화식사 019 ] 따라 하기엔 너무 어려운 명대사

ㅡ 영화 <12인의 노한 사람들> (12 Angry man, 1957)

   

혹시 나처럼 우스운 생각을 해본 사람이 또 있을지 모르겠다. 영화에서 본 명대사를 실생활에서 따라해 보고 싶던 생각 말이다. 영화 속 멋진 대사를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어릴 적에만 할 줄 알았는데, 다 크고 나서도 종종 우스운 공상을 하고 있다. 물론 정말 그렇게 했다간 못해도 5년 치 흑역사 예약이다.  

 

 

시드니 루멧 감독의 <12인의 노한 사람들>(12 Angry men, 1957)은 빈민가 소년의 친족살해 혐의를 두고 12명의 배심원들이 토론을 하는 이야기다. 헨리 폰다를 제외한 나머지 배심원들은 각기 나름의 근거로 소년의 유죄를 주장한다. 빈민가 소년이라서, 증인이 있어서, 혹은 오후에 야구경기를 보러가야 해서. 헨리 폰다는 참을성 있는 토론을 통해 온갖 편견과 이기주의로 가득 찬 배심원들과 외롭고 치열한 언쟁을 이어간다. 휴식시간에 그의 생각에 공감하는 배심원 한 명이 헨리 폰다를 위로하듯 “엄청난 사람들이죠?”라고 하자 헨리 폰다가 대수롭잖듯 대답한다. “평범한 사람들이죠.” 

기회가 된다면 나도 따라하고 싶은 명대사가 바로 이 대사였다. 야구경기 때문에 한 소년의 유죄를 5분 만에 결정짓는 이기적인 사람, 소년이 빈민가에 산다는 이유로 범죄자임을 확신하는 차별적인 사람, 그리고 잘은 모르겠지만 다들 유죄라고 하니 엉겁결에 따라가는 줏대 없는 사람. 이들을 “평범하다”고 규정하는 그에게서 내면의 강함과 용기가 느껴졌다. 만약 내가 영화 속 헨리 폰다였다면 편견과 악의로 나를 공격하는 사람들을 평범하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가스통을 들고 화형식을 치르는 어버이연합이나 동성애는 사탄행위라 부르짖는 종교인들을 보고 나는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평범하다는 말은 예컨대 나를 포함해 나와 사상을 함께 하는 주변인에게 해당되는 수식이다. 여자는 삼일에 한번 씩 패야 한다는 일베충이 나처럼 평범한 존재라고 보기엔, 너무나 괴물 같고 부조리하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가 편견과 차별에 대응하기 위해선 그런 사람들. 즉 나의 정치적 영역에서 벗어난 사람들 역시 (나처럼) 평범하다고 보는 냉소와 담대함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외국인 노동자와 노숙자를 사회에서 변형된 괴물로 규정해야만 안심하는 사람들이 영화 속 헨리 폰다처럼 되기를 바라는 것만큼이나.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헨리 폰다의 저 말은 현재로선 따라하기엔 너무 어려운 대사다.

 

 

 

<12인의 성난 사람들> (12 Angry man, 1957)

12명의 평범한 배심원이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 한 소년에 대해 유·무죄 결정을 내리는 과정을 통해 미국식 민주주의와 사법제도의 승리를 보여주는 밀실 드라마. 브로드웨이와 TV에서 이름을 날렸던 시드니 루멧의 데뷔작으로 연극적인 세팅을 흡입력 있는 영상으로 옮겨냈다. 미국영화연구소(AFI)가 선정한 역대 법정 드라마 2위에 올라 있다.

(중략) 일부는 이 영화를 브로드웨이 출신의 뉴요커 영화감독이 지식인층을 겨냥해 만든 계몽주의적 드라마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헨리 폰다가 맡은 캐릭터 때문이다. 이 엘리트 건축가는 자수성가형 사업가들에 비해 월등한 도덕적 우위를 점한다.

그런 이유로 미국의 영화평론가 마니 파버는 루멧을 “공민의식을 가진 척하는… 브로드웨이 출신 망명 감독”이라 비난했다. 폴린 카엘도 이 영화를 백인 남성 지식인의 판타지라 혹평했다. “이 영화의 사회심리학은 지식인층에 맞춰 완벽히 조율돼 있다. … 이 리버럴하고 공정한 건축가는 ‘그들’만의 영웅이다. 재판에 오른 소년도 그들이 꿈꾸는 희생양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12명의 노한 사람들 [12 Angry Men] (세계영화작품사전 : 법정영화,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