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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der/영화식사

[ 영화식사 021 ] '시선'의 공포로부터 해방될 권리

[ 영화식사 021 ] '시선'의 공포로부터 해방될 권리
ㅡ영화 <분노의 질주: 더 세븐>(Fast&Furious 7, 2015) 

 

일상생활을 하다가 꼭 한 번 남자가 부러운 순간이 있다. 불특정한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때다. 여기서 시선은 광범위한 범주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난데없이 위아래로 내 몸이 훑어지고 심지어 도찰까지 당하는 관음적 의미로서의 시선이다. 치마나 반바지를 입은 날엔 거리에 노상의자를 끌고 앉은 남자들 옆으로 지나가는 일이 집 밖을 나오는 순간부터 긴장을 부른다. 차라리 피해망상이라고 믿고 싶지만, 나보다 앞서 걸어가는 여성의 맨다리를 남자들의 눈이 끝까지 따라가는 광경을 보면 내 몸에 감기는 찜찜한 시선이 오로지 망상은 아닌 것 같다.  

성인사이트에 올라온 여성 특정부위를 도찰한 이미지들 중 혹시 내가 있을까봐 불안해서, 공중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는 것도 어느 정도 각오를 해야 한다. 애꿎은 남성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에스컬레이터에서도 내 뒤에 선 사람의 핸드폰이 신경 쓰인다. 쓸데없는 걱정이라기엔, 도찰된 여성의 이미지가 버젓이 유통되는 실질적 증거가 있지 않은가.

 

 

폴 워커의 유작이 되고 만 <분노의 질주:더 세븐>(2015)은 데카드 쇼(제이슨 스타뎀)가 걸어온 도발을 시작으로 묵직한 카 체이싱이 돋보이는 액션을 선보인다. 악역 한 명을 상대로 두 시간이 넘도록 싸우긴 밋밋했는지, 주인공 일당은 데카드 쇼를 잡는다는 명목 하에 천재 해커의 해킹 프로그램을 찾으러 전 세계를 누빈다. 이 해킹 프로그램은 정부에서도 눈독을 들일만큼 획기적이다. 카메라 렌즈가 달린 모든 기기를 해킹해서 특정인물의 동선을 어디든 추적할 수 있다. CCTV는 물론 누군가의 핸드폰 렌즈, 블랙박스 등이 실시간으로 위치정보는 물론 인상착의까지 포착한다.

 

 

오래전부터 액션영화에서 빠지지 않던 단골소재가 핵무기였다면 <분노의 질주:더 세븐>은 해킹, 엄밀히 말해 가공할 만한 감시·추적 기능을 선택했다. 물론 이러한 소재를 택한 영화 중 <분노의 질주:더 세븐>이 최초는 아니며, 이에 관해 진지하게 고찰하는 이야기도 아니다. 오히려 엄청난 인권 침해를 야기할 수 있는 해킹 프로그램을 범죄자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민간에 허용하는 비현실적인 설정도 보여준다. 다만 액션영화에서 핵의 존재가 인류의 공포이자 평화의 불안요소임을 자연스럽게 암시하는 것처럼, 누군가를 도찰하고 감시하는 프로그램이 핵에 견줄만한 새로운 위협이 되는 것도 머지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분노의 질주:더 세븐>에서처럼 공권력 행사로서의 감시 기능이 마냥 정당화될 수 있는 건 어떤 기술이든 쓰기 나름이라는 전통적 시각의 한계일 것이다.(참고 : 할리우드 사이언스, 김명진, p.28-29) 그렇게 따지면 핵 실험과 무기화 역시 공격과 동시에 방어의 용도로도 변명이 가능한 기술이다.

타인에 대한 시선이 충분한 법적 절차와 타당한 용도에서 벗어났을 때 일상은 공포가 된다. 슬프게도 이러한 시선 때문에 몸이 부위별로 갈가리 찢기는 기분을 느끼는 대상은 한정적이다.

 

 

<분노의 질주 : 더 세븐> (원제: Fast & Furious 7, 2015)

<컨저링>, <쏘우> 등 공포영화로 유명한 제임스 완 감독이 메가폰을 이어 받은 영화. 전작의 멤버(빈 디젤, 드웨인 존슨 등)들이 그대로 등장하며, 이번 편의 악역으로 등장한 제임스 스타뎀은 이후 분노의 질주8에서도 출연할 예정이다.

영화 제작기간 중 폴 워커가 자선행사에 참석 후 귀가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해 그의 유작이 되고 만 작품이기도 하다. 아직 촬영분이 남은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사망해 큰 차질을 빚었으나, 폴 워커의 두 형제가 대신 출연을 하고 이외에 CG 합성을 동원해 안정적으로 촬영을 마쳤다. 다만 <분노의 질주 : 더 세븐> 극 중 폴 워커가 레이서를 은퇴하고 평범한 가정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로 시나리오를 수정했다. 이로써 폴 워커가 연기한 브라이언 오코너는 더 이상 <분노의 질주> 후속편에 등장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