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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der/영화식사

[ 영화식사 018 ] 싸구려 재난영화가 시작된다

[ 영화식사 018 ] 싸구려 재난영화가 시작된다

ㅡ 영화 <캐리어스>

 

맘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를 꼽는다면 아이러니하게도 재난영화다. 특히 오락성이 짙은 영화일수록 작품성은 떨어질지언정 불안한 마음은 거두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영화를 즐길 수 있다. 일단 아이와 동물은 죽지 않을 테고. 무시 받던 학자는 영웅이 될 것이며 재난은 어떤 형태로든 끝나게 되어있으니까. 지진, 쓰나미, 역병 등 주제를 골고루 해가며 굳어진 도식이 낳은 편안함이다.

 영화가 현실이 됐을 때 편안함은 가시고 복장 터지는 답답함이 엄습한다. 메르스 이야기다. 영화에서나 나오던 정보의 불균형이 현실이 되니 이렇게 참담할 수가 없다. 이미 퍼져나간 유언비어를 색출하는 것보다 시급한 건 정부와 민간의 정보 불균형을 해소하는 길인데, 이조차 요원해 보인다. 재난영화엔 유일하게 사태의 심각성을 예견한 학자가 등장하지만 현실은 누구의 말이 맞는 건지 분간하기도 어렵다. 감염자의 통제가 불가능한 전개는 재난영화의 극 진행상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했다. 전 인류까진 아니더라도, 국가 단위의 역병이 속수무책으로 번지는 상황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보던 재난영화 속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했다면 너무 순진했던 걸까. 막상 현실은 그보다 더 심각한 싸구려 재난영화였던 셈이다. 그러나 영화와 달리 실제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크리스 파인 주연의 영화 <캐리어스>(Carriers, 2009)는 이미 바이러스가 인류를 잠식한 세계관에서 출발한다.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하기 위해 네 명의 젊은이들이 나름의 규칙을 지켜가며 바닷가로 향한다. 그 여정은 결코 쉽지 않다. 한국영화 <감기>(2013)나 <해운대>, 해외 블록버스터 <투모로우>(Tomorrow, 2013)처럼 초대형 자본이 투입된 재난영화의 경우 휴머니즘을 강조하는 한편, 규모가 작은 재난영화일수록 인간의 이기심을 강조한 반휴머니즘적 요소가 강하다. 재난이 종결되지 않고 그대로 끝나버리는 영화도 있다. <캐리어스> 속 주인공들 역시 극한 상황에서 인정마저 져버려야 하는 사건들을 접하며, 재난이 불러온 이기심의 극한을 보여준다. 

 

 

<캐리어스>(Carriers, 2009)

  알렉스 패스터, 데이빗 패스터 감독의 미국영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오염된 세상에서 살아남은 네 명의 젊은이들이 바이러스를 피해 어렸을 적에 살았던 해변으로 향한다. 그러던 중 바이러스에 감염된 어린 딸과 아버지를 만나고, 아버지는 치료약이 있는 병원까지만 데려다줄 것을 부탁하면서 갈등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