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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der/영화식사

[ 영화식사 28 ] 설령 더디고 선택적인 정의라도

설령 더디고 선택적인 정의라도

ㅡ영화산책 <스포트라이트> Spotlight, 2015

 

어렸을 적 텔레비전에서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을 봤다. 지독하게 얽힌 인연으로 각자의 복수를 위해 시퍼런 칼을 가는 등장인물들을 보며, 막연히 복수란 저 정도의 동기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거라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수많은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복수가 관객의 동조를 업은 행위로 나타나려면 말이다.

 

대개의 영화에서 복수는 사법 체계에서 벗어난 피의 활극으로 나타난다. 등장인물이 복수를 결심하기까지의 사연과 그로 인해 유발된 격한 감정을 통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등장인물은 관객에게 면죄부를 얻는다. <오로라 공주>, <킬 빌>처럼 어떤 영화들은 원한 관계가 명료하여 후반부에 가선 ‘이것으로 끝났다’싶은 안도감을 주지만 <복수는 나의 것> 같은 영화들은 뫼비우스의 고리처럼 원한과 복수가 끝없이 순환한다.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을까. 사법 체계에서 벗어난 개인적인 응징의 말로는 결국 비극일까. 물론 위에서 언급한 영화들이 그런 교훈을 의도한 것 같진 않다.

 

언젠가 토머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으면서 이해가 되지 않던 부분이 있다. 오레스테스의 이야기다. 오레스테스의 아버지 아가멤논은 아내인 클리타임네스트라와 그녀의 불륜 상대인 아이기스토스에 의해 살해된다. 훗날 성인이 된 오레스테스는 그의 누이 엘렉트라와 함께 자신의 어머니와 어머니의 애인을 죽여 보복한다. 그러나 그 즉시 근친 살해를 응징하는 복수의 세 여신 에리니에스가 울부짖으며 달려와 오레스테스를 끌고 간다. 나는 이 부분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오레스테스는 억울하게 살해 된 아버지의 원수를 갚았을 뿐인데, 어째서 복수의 여신 에리니에스에게 끌려가는가. 어머니에게 배신당하고 아버지를 잃은 오레스테스의 슬픔은 인간의 몫이며, 그로 인한 복수는 신의 영역이란 말인가. 앞서 말했듯 사적인 복수를 하려면 ‘저 정도’의 사연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오레스테스의 사연은 그런 복수의 동기가 되고도 충분해 보였다. 앞서 언급한 영화 속 주인공들 역시 사적 복수가 끝나면 에리니에스의 부름을 받고 나락으로 떨어진다. 나는 세 명의 여신 에리니에스의 처사가 부당해 보였다.

 

우리가 영화 속 주인공이 될 수 없다면. 다시 말해 주인공의 복수를 가능케 하는 영화적 스케일을 실제로 감당할 수 없다면, 복수는 사법 체계 안에서 실행할 수밖에 없다. 쉽지 않은 일이다. 부당한 노동재해, 범죄 등 현실에서 피해자들이 가해자에게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과정은 너무나 오래 걸리고 지난하다. 법조차도 호의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 사법 체계 안에서 얻어낼 보상은 너무 요원하고. 그조차 피해사실에 비하면 한참 부족하고. 이에 비해 영화 속 주인공들이 함무라비 법전대로 개인적인 복수를 실행하는 건 오히려 더 쉬워 보인다. 하지만 가장 단기적이고 즉각적인 복수라서 쉬워 보이는 것이다. 개인적인 복수가 그토록 수월하고 계획대로 풀린다면 애초에 개인이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오레스테스가 아버지의 복수를 마치자마자 에리니에스에게 불려간 것은 설령 사적 복수가 성공한다 한들 피해자 역시 더 이상 예전의 삶을 살 수 없다는 은유적인 표현일지도 모른다. 현실엔 오레스테스가 되지 않고도 피해사실을 알리고 바로잡기 위해 스스로 더 어려운 길을 걷는 사람들이 많다. 그 동기가 설령 마냥 선의적이지 않더라도, 그 길은 단숨에 해치우는 사적 복수보다 더 유의미하다.  

 

 

<스포트라이트>에서 더 보스턴지의 기자들은 1년 가까이 걸린 탐사보도로 성범죄 가해자들을 세상에 드러낸다. 피해자들을 일일이 찾아가 인터뷰하고 법원에 문서열람 승인을 받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다고 더 보스턴지의 기자들이 세상에 다시없을 소명감으로 이 일을 해냈는가? 이 영화의 좋은 점은 많은 비평이 칭찬하듯 성범죄 피해자의 피해사실을 굳이 시각적으로 묘사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언론인의 사명 혹은 개인의 정의감을 지나치게 드러내지 않은 점도 있다. 더 보스턴지 기자들은 보스턴 사제 성추행 사건이 어떤 반향을 미칠 수 있는지 꼼꼼히 검토한다. 피해자 인터뷰를 진행하다가도 다른 이슈가 터지면 잠시 취재를 중단했다가, 다시 이슈가 필요하면 재개한다. 범죄자의 뻔뻔함에 비분강개하는 것과는 별개로 이들이 보스턴 사제 성추행을 취재한 이유는 마냥 정의로운 선택 때문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렇다고 더 보스턴지를 비난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있을까 말까한 소수의 정의로운 언론인보다 적절한 이해관계에 따라 맹렬하게 파고드는 언론인이 더 많다는 사실이 우리에겐 더 현실적인 위안이 되지 않을까.

 

치부가 세상에 드러난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시대는 지났다. 하루에도 온갖 새로운 자극이 잔여물과 섞여 쏟아지는 미디어 홍수시대엔 단지 ‘드러났다’는 것만으로 해냈다고 말해선 안 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성폭행 가해자로 드러난 보스턴 사제들이 어떤 사법 처벌을 받았는지, 피해자들에겐 어떤 보상이 주어졌는지 끝까지 알아야만 비로소 이 세상은 정의롭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또한 지겹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기에, 당사자는 물론 지켜보는 사람들도 지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설령 더디고 선택적인 정의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이 마침내 도착하기를 바라야 한다.

 

 

 

<스포트라이트> Spotlight, 2015

스포트라이트》(Spotlight)는 2015년에 공개된 미국의 드라마 영화이다. 톰 매카시가 감독을 맡았으며, 매카시와 조시 싱어가 각본을 맡았다. 이 영화는 매사추세츠주 가톨릭 교회에서 10여년간 벌어진 아동 성추행 스캔들을 파헤쳐 퓰리처상을 수상한 <보스턴 글로브> ‘스포트라이트’ 팀 기자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마크 러펄로, 마이클 키턴, 레이철 매캐덤스, 리브 슈라이버, 존 슬래터리, 스탠리 투치가 출연한다. 2015년 9월,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였으며, 2016년 11월 6일 미국 전역에 개봉 되었다. 미국 아카데미상 각본상과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출처 -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