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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ner/Text road

[일본소설] 라쇼몽

 


라쇼몽

저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출판사
문예출판사 | 2008-04-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국내 처음 소개되는 아쿠타가와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단편 소설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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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 <라쇼몽>은 헤이안 시대, 전염병과 기근으로 폐허가 된 도쿄의 인간군상을 보여준다. 라쇼몽이란 시가지를 둘러싼 문 중의 하나로, 이 시대엔 시체를 버리는 용도로 사용되곤 했다. 아쿠타가와의 이 단편은 라쇼몽을 배경으로 짧고 강렬하게 몰락한 인간성을 이야기한다. 시체의 옷가지와 머리카락을 훔치는 노파와 그 노파의 옷을 강탈하는 남자. 저항하는 노파에게 너도 똑같지 않냐며 윽박을 지르는 남자의 한 마디는, 생존 앞에서 인의를 져버린 인간의 '탈'을 보여준다는 느낌이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이 단편과 동명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사실 제목만 같지 내용은 판이하다. 추락한 인간의 이기심을 보여준다는 점에선 어느 정도 일치하지만...사실 아쿠타가와의 작품보다 더 많이 회자되곤 하는 것이 구로사와의 영화 <라쇼몽>이다.

 


라쇼몽

In The Woods 
6.9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
출연
미후네 도시로, 쿄 마치코, 모리 마사유키, 시무라 다카시, 치아키 미노루
정보
시대극, 드라마 | 일본 | 87 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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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쇼몽>에선 네 명의 관계자들이 나온다. 사무라이, 사무라이의 아내, 도적, 그리고 나무꾼. 하나의 살인사건에 대해 이 네 명은 서로 다른 증언을 주장한다. 명백하게 존재하는 한 가지 사건을 두고 제각각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진술하는 것이다. 일견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나무꾼의 증언이 가장 진실에 가까워보이지만, 사실 나무꾼 역시 이 사건의 관계자임이 밝혀진다. '라쇼몽 효과'는 바로 이 영화에서 비롯된 단어로, 자신에게 불리한 부분은 생략하고 유리한 부분만 기억하거나 주장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과거에 대한 집착이 심한 성격이라 지나간 기억은 되도록 좋게좋게 생각하려는 편이다. 후회할 수록 현재가 더욱 괴로워져서다. 기억은 온전히 개인의 것이니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선 멋대로 미화시켜 버린다. 그래야만 내 정신 건강이 온전할 수 있다면 그 정도 왜곡 쯤이야 소소한 욕심으로 봐줄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기억이 항상 개인적일 수는 없으며, 때때로 누군가와 공유한 시간이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곤 한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비튼 기억이 상대방에겐 잔인한 피해를 입힌다. 라쇼몽 효과다. 그렇게 해서 본인의 체면이 산다면 그러라고 냅두고 싶지만. 영화 <라쇼몽>에서도 나타나듯 서로의 주장이 거듭될 수록 드러나는 진실은 인간의 졸렬한 이기심일 뿐이다. 나를 포함해 누구나 지나간 일에 떳떳하기란 참 어렵다. 요즘 들어선, 과거를 담담하게 마주할 수 있는 경지야말로 성숙한 인간의 형태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진실을 향한 공방전이 계속 될수록 그 자체가 진흙탕처럼 더러워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도플갱어>. 짧은 단편일 수록 작가가 일부러 숨겨놓은 맥락이 있는데, 그 숨은 텍스트를 유추하는 과정이 재미있다. 단편 <도플갱어>에선 아내가 자신의 도플갱어와 함께 있는 모습을 목격하는 남편이 나온다. 남편은 아내가 도플갱어에게 속고 있다고 생각하며 불안해 한다. 심지어 집안에서도 자기가 아닌 도플갱어와 부부의 대화를 나누는 아내를 본 남편은 깊은 절망을 느낀다. 급기야 아내는 남편의 도플갱어와 함께 잠적을 하고 만다.  

이 이야기의 숨은 텍스트는 무엇일까? 역자 후기에 나온 해설에 의하면, 남편의 도플갱어는 사실 아내의 불륜 상대다. 남편은 아내의 외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내의 불륜 상대를 도플갱어라는 초현실적 존재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소설 말미에 나온 아내와 도플갱어의 잠적은 사실상 아내의 가출로 받아들여진다. 나는 이 해석이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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