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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ner/Text road

[판타지] 퇴마록 외전

 


퇴마록 외전(그들이 살아가는 법)

저자
이우혁 지음
출판사
엘릭시르 | 2013-03-3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퇴마록』 출간 20주년, 그들이 돌아왔다!출간 후 현재까지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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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완결을 본 게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으니 그로부터 10년이 훌쩍 넘었다. 그럼에도 최근 외전 출간 소식이 나오자마자 화제가 된 걸 보면 작품성은 둘째치고 퇴마록 시리즈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교보문고에 갔을 때도 신간도서 코너에 진열된 퇴마록 외전만 없어서, 설마 다 팔린 건가 했는데 다행히 재고가 몇 권 남아있었다.

요즘도 퇴마록을 읽는 사람이 있을까? 고전이라고 말하는 작품들은 대부분 그 시대였기 때문에 인기가 있었던 경우다. 예를 들어 작년에 <007 스카이폴>이 나왔을 때, 007 시리즈를 알고 있던 세대는 007이 초기 때부터 이룬 명성을 의심하지 않겠지만. 나같은 뒷세대는 이제 와서 <007 골드핑거>나 <007 두번 죽다> 등을 봐도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제임스 본드는 왜 항상 허세를 부리고 여자와 잠자리를 하는지에 대해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007 시리즈가 나왔을 당시의 시대적 감성을 모르는 이상, 그 작품이 왜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는지 다 이해하긴 어렵다.

이제서야 퇴마록 국내편 1권을 본 사람들은 오히려 싱거워할지도 모른다. 소설치곤 미숙한 문체와 묘사에서 당황할 것이고, 이야기 전개가 유치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아마 내가 숀 코네리가 나온 007를 본 느낌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007이 처음 나왔을 당시 사람들이 열광했던 반응을 폄하할 순 없다. 퇴마록도 마찬가지다.

퇴마록이 하이텔 게시판에서 수많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이른바 한국형 판타지의 대표물이 된 경위는 무엇보다 소재에 있다. 이우혁은 톨킨형 판타지 세계에서 벗어나 퇴마사들의 악령퇴치담이라는 단순하고도 친숙한 소재를 가져왔다. 배경도 한국에 어디에서나 볼 법한 일견 평범한 사람들이 사실 퇴마사라는 점 역시 퇴마록의 매력이다. 여기에 점점 각종 설화나 전설들이 더해져 무협, 괴담, 오컬트 등이 어우러진 혼합장르로 나아간다. 문체미숙, 제야역사관, 국수주의 등 몇 가지 논란이 오가곤 하지만 스토리텔링 면에선 작가 본인이 준비한 자료가 어마어마하다. 무엇보다 주연과 조연 캐릭터 하나하나가 생명력이 있다. 

이제 정말로 외전 얘기. <퇴마록 외전-그들이 살아가는 법>은 크게 다섯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되었다. 국내편 1권 '하늘이 불타던 날' 이후 박신부와 현암, 준후가 한 집에서 살게 된 이야기와 이들의 첫 퇴마행, 그리고 현암과 승희의 짧은 데이트, 준후가 처음으로 학교에 간 에피소드, 마지막으로 백호의 의뢰를 받은 주기선생의 에피소드가 전부다. 

퇴마록 전권을 다 읽은 사람이라면 본편을 새록새록 떠올리며 읽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특히 현암과 승희의 슬픈 사연을 알고 있는 독자라면, 외전에 나온 '짐 들어 주는 일'을 읽고 다시 한번 가슴이 아플 것이다. 첫 에피소드인 '그들이 살아가는 법'을 보면 이들이 처음부터 가족처럼 서로를 대했던 게 아니라는 점이 생경하다. 밀교에서 막 나와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준후. 자신의 힘을 아직 통제하지 못하는 현암. 그리고 이 둘을 포용하고 동료로 받아들이려는 박신부. 같은 듯 다른 세 남자의 동거가 시작되면서 박신부가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지를 느끼게 하는 에피소드였다. 박신부는 회를 좋아하는데 현암이나 준후는 냄새만 맡아도 고역이니(...) 특히 준후의 잔망스러움이란. 음식만 차렸다 하면 비린내가 난다, 속이 뒤틀린다하며 숨어버린다. 조숙해보이면서도 어린아이인 준후를 위해 박신부와 현암은 자연스럽게 자상한 아버지와 엄한 형의 포지션을 만든 것 같다.

본편에 비하면 퇴마록 외전은 꽤 가벼운 이야기들이다. 작가도 미리 말했듯이, 외전은 본편의 연장이 아니며 본편에선 생략된 부분을 조금 메꾼 것에 가깝다. 일종의 팬서비스라는 느낌을 받아서일까 아쉬운 점도 있었다. 사실 퇴마록 신드롬의 포인트는 그 방대한 자료와 전투 장면이었는데...외전에선 소소하다 못해 너무 심심한 이야기들이 중심이라 다 읽고 나면 허무하다.

라이트한 소재는 그렇다쳐도 외전에서 만나고 싶었던 캐릭터들이 전부 다 나오지 않았다. 10여 년만에 조우한 퇴마록 사람들이 한정적이라는 점. 그래서 본편을 메꾸는 외전임에도 아쉬움이 남는다는 점. 외전 2권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까지 생기지만 아마 퇴마록 영화화가 시작된다면 2권은 요원해보인다. 그래서인지 외전을 읽고 나니 본편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책장에 꽂힌 국내편이며 세계편, 혼세편, 말세편 등등을 다시 꺼내 읽었다. 최근에 나온 외전을 읽다 본편을 읽으니 확실히 세월이 느껴진다. 그때 퇴마록을 읽던 나와 지금의 나는 정말 다르구나. 내가 아무리 퇴마록에 대해 칭찬을 한들 지금 그 책을 처음 읽는 사람에겐 설득이 부족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를 탓할 일이 아니다. 퇴마록의 작품성도, 그 사람의 비평적 관점에도 아무 잘못이 없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문화 산물 중 몇 개는 그 당시의 감성이어야만 가능했던 것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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