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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ner/M to M

[고어] 하우스 오브 왁스

 

남녀가 단체로 여행을 갔다가 살인마에게 차례차례 죽는 이야기. 헐리우드 공포영화의 고전적인 플롯입니다. 뭔 놈의 히치하이킹을 그렇게 좋아하는지, 게다가 땅덩어리가 넓어서 그런가 꼭 외부와의 교신도 안 되는 외진 곳만 잘 찾아갑니다. 주인 없는 낡은 주유소도 나와줘야죠. 시덥잖은 농담 따먹기를 하다가 주인공들은 차차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느낍니다. 하지만 걱정도 별 수 없이, 정해진 수순대로 한 명 씩 죽어나가요.

 


하우스 오브 왁스 (2005)

House of Wax 
8.2
감독
자움 콜렛-세라
출연
엘리샤 커스버트, 채드 마이클 머레이, 브라이언 반 홀트, 패리스 힐튼, 제러드 파달렉키
정보
공포, 스릴러 |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 113 분 | 2005-05-20

 

 

그러다 마지막에 살아남는 주인공은 꼭 여자입니다. 성에 개방적이고 약간 발랑 까진(?) 친구들은 다 죽구요. 가장 침착하고 조용하며 개념있어 보이는(!) 여자가 살아남습니다. 일명 "최후의 그녀" 클리셰입니다. 70년대 다시 기승한 보수주의적 사회 분위기가 영화에도 반영되어, 섹스와 마약에 찌든 젊은이들이 처참하게 살해당함으로서 일종의 징벌을 받는 한편, 상대적으로 순결한 여주인공은 끝까지 살아남습니다. 요즘 들어선 이런 클리셰를 차용하는 경우가 별로 없지만, <호스텔2>나 <케빈인더우즈>를 보면 여전히 종종 쓰이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하우스 오브 왁스> 역시 이러한 공포영화의 기본 플롯이나 클리셰를 따라간 영화입니다. 한 가지 다르다면, 여기서 살아남는 건 여주인공뿐만 아니라 여주인공의 쌍둥이 오빠도 있어요. 소재는 독특하죠. 히치하이킹을 하다 낯선 마을에 도착했는데, 알고 보니 마을 사람들이 전부 왁스로 만든 인형입니다. 게다가 이 인형을 전부 살인마 형제가 만들었습니다. 즉 이 마을에 살아있는 거라곤 살인마 형제 밖에 없어요. 마치 개미지옥처럼 미리 굴을 파놓고 희생양들이 마을에 오기를 기다렸던 거죠.

 

여담이지만 헐리웃의 핫한(지금도 그런진 잘..) 샐러브리티 패리스 힐튼도 나옵니다. 여주인공의 친구 중 한 명으로 나오는데, 죽을 때 모습이 여러모로 안습입니다. 흑인 남자친구와 텐트 안에서 므흣하게 놀다가 남친이 먼저 살해당하고, 혼비백산해서 텅 빈 마을 안을 도망 다니죠. 그러다 살인마가 들고 있던 두꺼운 막대기에 말 그대로 머리가 뚫려서 죽습니다(...) 2005년 당시에 봤을 때도 전 이 장면이 정말 난해하더군요. 사람 머리가 찰흙으로 만든 것도 아닌데, 기계도 아니고 사람의 힘이 실린 나무 막대기로 뚫리다니.....살인마의 이 보통 사람을 훨씬 뛰어넘을만큼 기괴한 수준이거나, 패리스 힐튼의 두개골이 유독 단단하지 않은 편이라고 믿는 게 편안한 영화감상을 위해 좋겠지요....

 

흠좀무한 건 이 살인마 형제들이 살인을 하는 이유가, 밀랍칠을 해서 인형으로 만들기 위해서랍니다. 그것도 산 채로 밀랍칠을 하기 때문에, 처음 인형이 되고 난 뒤 얼마간은 살아 있습니다. 결국 아사를 하거나 질식을 하거나 해서 죽게 되지만 겉모습은 인형으로 남아 있는 겁니다. 아니....고대 이집트인들도 미라를 만들 땐 시신의 장기를 모두 빼냈다는데, 그대로 밀랍을 칠해버리면 나중에 시체에서 나올 오물이며 부푼 장기의 가스는 어떻게 해결하려고? 여러모로 미덥잖지만 영화니까 그러려니 믿는 게 편안한 영화감상을 위해 좋겠지요....

 

 

어쨌든 영화 중반부턴 죽을 친구들은 다 죽고, 주인공 형제 VS 살인마 형제의 구도로 나아갑니다. 이 구도가 참 재미있죠. 주인공 형제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 평범한 가치관을 갖고 자란 아이들입니다. 여주인공의 쌍둥이 오빠는 다소 반항적인 성격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담력이 크고 여동생을 아끼는 마음도 있지요. 여주인공 역시 침착하면서도 강인한 면이 있어, 손가락이 잘린 상태에서도 오히려 그 손가락에서 뿜어나오는 피를 이용해 자신의 입을 봉해버린 접착제를 떼어냅니다. (이 장면은 정말 강렬하다 못해 속이 후련합니다) 어쨌든 둘 다 정신적으로 건강하죠.

 

반면 살인마 형제는 살아있는 사람을 밀랍인형으로 만들 만큼 잔인하고, 교활합니다. 이들의 가정환경이 정상적이지 않았다는 건 영화 초반에서 암시를 해줍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두 아기가 아기용 보조의자에 앉아 정신사납게 울어대는데, 다음 순간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못 참겠다는 듯 아기의 뺨을 때려버려요(...)

 

여주인공이 참 예쁩니다

 

형제 중 동생은 외모가 기형인데, 아마 태어날 때부터 그랬었고 그로 인해 성장환경이 더 어둡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보통 맏이인 형이 깔끔한 외모와 화술로 여행객들을 속이고, 살인 및 인형 제작은 얼굴이 기형인 동생이 담당합니다. 이들이 이런 미친 짓을 계속하는 이유는 아마 형제가 공유하고 있는 반사회적인 성격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진짜 사람하고는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으니, 사람을 인형으로 만들어 하나의 마을을 만듦으로서,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겁니다.

 

이러한 두 쌍의 형제가 벌이는 난투극은 정상과 비정상의 대립으로도 해석됩니다.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란 가족 구성원과, 그렇지 못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비정상적인 환경을 스스로 조성해 나가는 가족 구성원. 너무나 단순하고 극명한 이분법적 대립이라 아쉽습니다. 이 대립의 결과도 별반 신선하지 않죠. 주인공 형제는 살아남고, 마치 살인마 형제의 비정상적인 정신세계를 반영하듯 밀랍으로 만든 그 집은 모조리 녹아버립니다. 살인마 형제의 시체와 함께요. 소위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인식에서 별로 벗어나지 못한 결말입니다.

(물론 영화 맨 마지막에 소소한 반전?이 있긴 합니다. 알고 보니 그 살인마 형제가 2명이 아니라 3명이었다! 같은...)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 (2005)

The Texas Chainsaw Massacre 
7
감독
마커스 니스펠
출연
제시카 비엘, 조나단 터커, 에리카 리어슨, 마이크 보겔, 에릭 벌포
정보
범죄, 공포 | 미국 | 97 분 | 2005-06-16

 

그런 점에서 같은 시기에 개봉한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2005)은 원작을 효과적으로 리메이크한 수작입니다. 더 발전된 특수효과 기술로 정교한 표현을 구사해냈을 뿐만 아니라, 6-70년대 공포영화가 보여줬던 백인 중산층 가정의 명암도 제대로 제시해줬죠.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은 얼핏 <하우스 오브 왁스>와 구조가 비슷합니다. 히치하이킹을 하러 온 젊은이들이 낯선 마을에 도착해 살인마에게 무자비한 살육을 당합니다. 이 살인마는 주무기인 전기톱으로 사람을 산 채로 토막내는 일을 즐깁니다. 또한 시체의 얼굴가죽을 벗겨 자기 얼굴에 덮어쓰고 다니죠. 놀랍게도 이 살인마에게도 가정이 있으며, 살인마는 추정컨대 태어날 때부터 외모가 기형이라 얼굴가죽 수집에 집착합니다.

 

전기톱 살인마의 가정은 일견 평범해 보입니다. 평범한 어머니와 형제들, 그리고 갓난 아기까지 있는 가족구성원이죠. 최후에 살아남는 여주인공도 처음엔 속아서 그 집으로 도망쳤다가 전말을 알아채고 도망갑니다.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 <왼편 마지막 오두막집> 등 6-70년대 공포영화에선 백인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비정상적 살인마의 모습이 종종 나옵니다. 또한 살인마와 살벌한 난투극을 벌이고 마침내 승리한 주인공이 결국 똑같이 손에 피를 묻히는 스토리를 통해, 결국 괴물은 가장 평범한 곳. 가장 정상적인 환경에서 자라난다는 역설을 보여줍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살인마의 가족은 살인마의 불운한 환경을 옹호하며 살인 행위를 정당화하죠. 어쩌면 괴물은 신체적 특징이나 가정의 경제적 여건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환경과 사람으로 자라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남기는 영화입니다.

 

  

특히 이 리메이크작은 74년에 나온 원작과는 달리 여주인공이 전기톱 살인마의 가정에서 도망치는 동시에 거기 있던 갓난아기까지 스틸(...)해냅니다. 이 아기 역시 이런 집구석에서 자라다간 전기톱 살인마처럼 될 거란 생각이었을 겁니다. 주인공의 아기 스틸은 앞서 말한 괴물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메시지를 한 번 더 상기하게 해줍니다. 74년작에선 전기톱 살인마를 죽인 여주인공이 나중엔 본인이 전기톱을 들고 괴성을 지르면서 끝납니다. 전 이 결말이 더 무섭더군요;;  

개인 대 개인의 싸움이 아닌, 가족 대 가족의 대립 양상을 보여준단 점에서 <하우스 오브 왁스>의 결말은 다른 영화들에 비해 다소 아쉬운 감이 있습니다. 물론 결말은 속시원해서 좋지요. 사실 전 단순해도 주인공이 이기는 영화가 좋습니다. 안 그러면 괜히 기분이 찜찜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