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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ner/Text road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저자
알랭 드 보통 지음
출판사
청미래 | 2013-01-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2005년 4월 14일 'TV 책을 말하다' 추천도서. 남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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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주변이 없는 사람이라도 '사랑'에 대해 말해보라하면 표현의 차이는 있을망정 대답을 주저하진 못할 것 같다. 어떤 형태로든 누구나 강렬하게 경험해봤을테니까. 사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에 대한 담론은 오히려 좋아하지 않는다. 감정적으로 겪은 걸 굳이 이성적으로 전환해서 생각하기 귀찮기도 하고. 어쩌다 보는 로맨스물도 심적으로 공감하는 재미로, 혹은 환타지를 경험하는 즐거움으로 보는 경우다. 그래서 알랭드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도 그래그래, 맞아맞아, 고개를 끄덕이며 읽어나갔다.

보답받지 못하는 사랑에 빠져 어떤 사람[천사]을 보면서 그 사람과 함께 천국에서 누리는 기쁨을 상상할 때,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위험을 잊기 쉽다. 정작 상대가 나를 사랑해줄 경우에 그 사람의매력이 순식간에 빛이 바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타락한 우리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이상적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서 사랑을 한다. 그런데 그런 존재가 어느 날 마음을 바꾸어 나를 사랑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묻게 된다. "그/그녀가 정말로 그렇게 멋진 사람이라면, 어떻게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스스로 사랑받을 만한 존재라고 확신하지 않는 경우에 타인의 애정을 받으면 무슨 일을 했는지도 모르면서 훈장을 받는 느낌이 든다.

고등학교 동창과 술을 마시다가 그 애의 남자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제 일이 끝나서 차 타고 집으로 가려고 한단다. 공연일을 하기 때문에 지방투어가 잦고 일도 늦게 끝나서 항상 피곤해한다며 친구는 내게 부연설명을 해주었다. 가만히 술을 마시면서 그 친구의 통화내용을 듣고 있었다. "집에 가게?...응. 난 친구랑 술마시고 있어. .....알았어, 잘 들어가." 전화를 끊고 나서 친구의 표정이 어두웠다. 왜 그러냐고 묻자 지금 자기는 이미 버스도 끊겨서 택시 타고 가야하는데 남자친구가 데리러 오지 않는 게 속상하다고. 그럼 데리러 오라고 해. "어떻게 그래."라며 궁시렁대는 친구의 목소리는 먼저 부탁하기 자존심 상한다는 뉘앙스였다. ㅡ결국 이래저래 해서 남자친구가 데리러 간다고 했다. 신나서 전화를 끊은 친구가 다시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번엔 또 왜그러냐고 묻자 "내가 귀찮게 하는 건가? 피곤한데 괜히 오라고 하는 건가? 미안하다고 말할까?"

..보답받지 못하는 사랑은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안전하게 고통스럽다. 자신 외에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초한 달콤씁쓸하고 사적인 고통이다. 그러나 사랑이 보답받는 순간 상처를 받는다는 수동적 태도는 버려야 하며, 스스로 남에게 상처를 입히는 책임을 떠안는 각오를 해야 한다.

 

Frank stockton www.frankstockton.com

나처럼 자존감이 낮은 그 친구는 연인이 자신에게 베풀어준 호의에 기뻐하면서도 불안해했다. 자신이 받는 '과분한' 사랑이 도리어 자신에게 독이 될지도 몰라서였다. 사랑이란 것도 결국 어떻게 보면 감정노동 중 하나라고 본다면 그 친구는 남자친구가 베푼 '무임노동'을  자신이 받아도 되는가 헷갈려하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보답받지 못하는 사랑에 빠져서 자신의 사랑이 보답받기를 갈망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꿈이 공상의 영역에 남아 있는 것을 더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나 자신을 더 낫게 생각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사랑하는 사람이 마르크스주의자를 우습게 생각할 때에만 마르크스주의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계속해서 최대로 존중하게 된다.

재미있게도 알랭 드 보통은 이를 두고 '마르크스주의적'이라고 했다. (내가 볼 땐 츤데레인데) 난 이렇게 엉망인데 저 사람이 날 사랑해줄 리가 없어!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이면엔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지만, 막상 그게 현실이 됐다고 해서 해피엔딩은 아니란 것이다. 줄곧 동경해왔던 그 사람과 감정적 교류를 해갈수록 한없이 내가 없어보이고, 낮아보이고 안어울려 보인다.

...대부분의 관계에는 보통 마르크스주의적인 순간이 있다. 사랑이 보답을 받는 것이 분명해지는 순간이다......자기 혐오가 우위를 차지하면, 사랑의 보답을 받게 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이런 저런 핑계로] 자신에게 잘 맞지 않는다고 [자신의 쓸모없는 면들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잘 맞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자기 사랑이 우위를 차지하면, 사랑이 보답받게 된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수준이 낮다는 증거가 아니라,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되었다는 증거임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남자친구에게 늦은 시간에 피곤한데 데리러 오게 해서 미안해, 라고 문자를 보낼까말까 고민하는 친구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자 친구가 푸념을 했다. "넌 참 쿨해서 좋겠다." 나는 웃어버렸다. 쿨하긴. 남의 연애니까 쿨하지, 내 연애는 이렇게 심드렁하게 못하지. 아마 너보다 더 수없이 고민하고 혼자 좋았다 슬펐다를 반복할 거라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걱정을 사서 하는 사람이 바로 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