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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ner/Visual road

[강의] <월요일 오후 5시>

국립극단에서 매주 월요일 오후 5시에 스튜디오 넷에서 진행하는 무료강좌에 오늘부터 다니고 있다. 10월 주제는 김영숙 강사님의 '불친절한 현대 미술 따라잡기'. 1,2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미술에 등장한 여러 사조들을 공부하고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였다. 게다가 마냥 미술사를 공부하는 게 아니라 강사님의 재미를 곁들인 설명까지 있어서 2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린다. 11월엔 슬라보예 지젝에 관한 강좌라니까 다음달도 들어야겠다. 휴학하면서 공부다운 공부를 해본 적이 없는데 매주 한 번이지만 이렇게 교양수업을 들을 수 있으니 기쁘다. 새삼 배운다는 게 즐겁다는 생각도 들고...그냥 듣기만 하면 아쉬우니까 필기한 거 정리 :D

 

1. 미술사에서의 모더니즘

미술사에서의 모더니즘 : 의도적으로 고전적 전통적 표현방법에서 이탈한 회화양식을 추구하는 것으로 건축, 문학, 음악 등에도 유사한 양식과 운동이 적용되며, 19세기 중반의 쿠르베의 사실주의와 인상파 전후의 미술부터 주로 모더니즘이라고 언급한다. 이들은 가치의 부정, 회의와 더불어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관심을 우선시 했다.

 

말레비치 - 검은 사각형(1913)

 

2. 모더니즘 미술의 경향
1) 1점 시점의 원근법 파괴와 대상의 단순화, 관념화 (ex : 세잔, 피카소)
2) 미술을 통한 내적표현 (고흐, 뭉크, 마티스 주도의 야수파, 독일 표현주의 등)
3) 세계에 대한 관념적 시선 (20세기 초, 입체주의) ---> 관념적 시선이란? 3차원 -> 2차원 (피카소)
4) 추상화의 발전 (몬드리안과 칸딘스키)
5) 반(反)예술과 무의식의 세계 (1차 세계대전 직전후의 다다와 초현실주의)

다다이즘

- 모든 사회적, 예술적 전통을 부정. 반이성, 반도덕, 반예술을 표방.

-1차 세계대전 중 스위스에서 시작 --> 전쟁을 피해 중립국으로 피한 예술가들이 시도

- 다다이즘의 '다다'(dada)는 무의미함에서 의미를 이끌어낸 단어. 사전 중 아무 곳이나 펴서 나온 단어를 사용한 것에 불과하다 -> 다다이스트들이 중시하는 우연적 결과. 필연, 운명적인 것에 대한 거부

- 전쟁에 환멸을 느끼고, 이 전쟁을 일으킨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에 대한 부정으로 기괴하고 충격적인 작품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예술적 숙련보다 우연의 효과에 의존. 전쟁에 의해 낙관적 미래관이 붕괴. 허무주의 대두.

- 예술적 허무주의. 아나키스트적.

- 이전까진 예술을 노동과 같은 분류로 취급. 즉 시간과 고생, 노력 등에 따른 미술품 가치의 합리적 계산. 하지만 다다이즘은 여기서 벗어나, 캔버스에 붓 하나 슥 그려도 그것이 예술이 될 수 있음을 강조.  

전쟁시기 이러한 전위예술들은 히틀러에 의해 탄압을 받았다. 선전과 선동의 목적으로 예술을 취급했던 히틀러에게 있어 전위예술 특유의 자유로움과 무억제가 마음에 들었을 리가. 히틀러는 프로파간다에서 벗어나는 모든 예술품들을 탄압했는데, 이를 '히틀러의 아트쇼'라고 부른다. 이로 인해 재즈가 금지되었고,헤밍웨이, 토마스 만과 같은 작가들의 책이 불살라졌다.

이러한 탄압에 반기를 들고 피카소와 마티스, 칸딘스키 등이 주도해서 만든 것이 "퇴폐미술전". 공공 미술기관을 비판하며, 작품을 비판하는 수준을 넘어 모욕하기까지 함. 한마디로 기존의 전통적인 예술작품들을 쓰레기 취급하고 헐값에 판매. 하지만 유명한 작품들이 헐값에 판매되자 다량의 수요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오히려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한스 아르프 - 우연에 의한 콜라주

한스 아르프의 작품은 이러한 다다이즘을 반영했다. 양면 색종이를 잘라 바닥에 떨어뜨린 뒤 배열된 모습 그대로 붙였다. 즉 어떤 목표를 갖고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우연에 의한 결과물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

하여튼 다다이스트들은 민족주의, 전통과 합리적 이성을 완전히 거부했다. 기괴한 옷차림으로 퍼포먼스를 시행하거나 아무 의미도 없이 순전히 소리로 구성된 음성시를 낭송하기도. 보편적인 의미를 초월하고 평범함을 거부한 반예술적 집단.

오브제 : 다다, 초현실주의 등의 미술에서, 작품에 쓴 일상생활 용품이나 자연물 또는 예술과 무관한 물건을 본래의 용도에서 분리하여 작품에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느낌을 일으키는 상징적 기능의 물체를 이르는 말.

레디메이드 : 마르셀 뒤샹이 만든 용어. 비미학적으로 대량생산된 사물을 예술가의 간섭을 최소화한 가운데 선택하고 전시하는 오브제 작품을 말함.

 피카소 - 황소머리

 피카소와 뒤샹의 작품들이 오브제의 예시. 피카소의 <황소머리>는 자전거 부품을 통해 새로운 의미(황소)를 부여했다면, 마르셀 뒤샹의 <샘>은 사물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그저 제시만 할 뿐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예술가의 역할은 재현이 아닌 제안이라는 것.

마르셀 뒤샹 - 샘

<샘>의 의의

- 사물의 본래 기능 제거. 길에서 굴러채이는 돌멩이도 미술관에 놓는 순간 다른 맥락으로 해석.
 = 예술에 대한 조롱이자 감상자에 대한 비웃음. 뒤샹이 노린 것은 바로 그 자체였다.

- 이것은 왜 예술인가? 예술계가 인정하므로. 
  예술은 닫힌 의미로 규정할 수 없다.

- 뒤샹은 자기 작품이 나중에 어떻게 처분되든 버려지든 상관하지 않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 모나리자

 그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생전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미술작품이 고작 20여 점인 것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는데, 그저 그가 너무 바빴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화가이기 이전에 너무나도 많은 분야에서 활약한 세기의 천재였다. 그런 그에게 가만히 앉아서 그림을 그리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했던 것. <모나리자>를 두고 다빈치의 모국인 이탈리아에선 그의 작품을 반환해달라는 주장이 제기되는데,(현재 <모나리자>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소장) 사실 이 작품은 그가 생전에 프랑스 궁전에 초대되어 갔을 때 그렸던 걸 프랑스 왕에게 선물한 거라 돌려줄 이유가 없다는 의견이다. 프랑스 왕은 그를 궁에 초대해 여기서 지내면서 하고싶은 대로 해라, 라고 했다. 천재니까 뭘 만들든 후세에 길이 남을 거라는 선경지명(!) 그래서 나온 것이 이 <모나리자>. 최초로 스푸마토 기법(윤곽선을 흐릿하게 그리는 기법)을 활용했고, 당시에 정면이 대세였던 흐름을 벗어나 측면 구도로 그려 여러가지 면에서 <모나리자>는 오늘날까지 최고의 예술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다른 면에서 접근해보면, <모나리자>를 오늘날 이렇게까지 유명하게 만든 것은 루브르 박물관의 전략이라는 평도 있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작품들 중엔 <모나리자>만큼이나 뛰어난 작품들이 많은데 유독 <모나리자>만 방탄유리 안에 들어가 있고 이 작품만 사진촬영이 불가하다. 이러한 희소성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루브르 박물관에 가면 다른 건 몰라도 <모나리자>는 봐야한다는 이른바 '아우라'를 만들어냈다는 것.

마르셀 뒤샹은 이러한 <모나리자>를 조롱하는 의미에서 <L.H.O.O.Q>를 만들었다. 사실 <모나리자>를 비난한다기 보단 <모나리자>가 내포하고 있는 전통성에 대한 모욕이 그의 의도.

 

마르셀 뒤샹 - L.H.O.O.Q (그녀의 엉덩이는 핫하다)

다다이즘과 미래파

미래파 : 이태리에서 발생. 현대화, 기계문명에 대한 우호적 갈망에서 비롯. 파스타를 둔하고 살찐 자만심의 상징이라고 비판할 정도로 전통과 과거를 파괴하려는 운동이었다. 미래주의 선언문을 통해 기계, 빠른 속도에 대한 아름다움을 찬양. (ex : 자동차)
"전쟁이야말로 세상의 유일한 위생학"이라고 말해 파시즘적인 성격을 띠었으나 막상 전쟁이 터지자 조용해졌다...오히려 파시스트 혐의를 받아 안해도 될 수난을 당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반전통적 성향은 비슷한 가치를 지향하는 다다이즘에게 영향을 주었다.

 지아코모 발라 - 끈에 묶인 개의 동작, 1972

위 그림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래파는 이처럼 역동성과 움직임, 빠른 속도를 중시하는 사조였다. 이에 영향을 받은 다다이스트 중 한 명인 마르셀 뒤샹은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란 작품에서 모션의 움직이는 동선에 따른 동작성을 강조했다.

 

마르셀 뒤샹 -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

 

초현실주의

초현실이란? 현실을 부정하는 개념이 아니라 현실(지각하고 있는 것)과 무의식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전후 파리의 시인 앙드레 브르통에 의해 시작된 초현실주의는 합리적인 일상생활에 반기를 들고 상상과 꿈을 그린 그림이나, 문학 등의 예술을 주도해나가는데, 이들은 '초현실'이라는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고자 했다.

특히 세기 전환기에 등장한 프로이트의 이론에 영향을 받아, 무의식적인 생각과 욕망에서 비롯된 인간의 행동에 대해 연구하고자 하였고, 그 욕망이 꿈으로 나타나는 것에 주목한다.

다다의 오브제 개념은 반이성과 현실부정이라는 측면에서 초현실주의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특히 어울리지 않는 낯선 조합으로 작품을 구성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시인 르토레아몽의 싯귀에 나온 "수술대 위의 우산과 재봉틀의 만남"과 같이, 기이한 이미지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반영한다. 이런 조합은 주로 꿈에서처럼 아무 관련도 없는 사물들을 한데 결합하는(데페이즈망) 무의식적인 연상 작용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초현실주의는 '꿈'과 밀접하다. 초현실주의 작품을 접했을 때 수용자가 내릴 수 있는 해석은 각기 다를 수 있으며, 여기엔 정답이 없다. 마치 우리가 꿈을 꾸고 난 뒤 그 꿈에 대해 해몽을 내리는 것과 비슷하다. 즉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는 것. 이러한 초현실주의 작품들은 마치 꿈속에서처럼 사실적인 묘사를 하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들이 연출된다.

오토마티즘 : 자동기술법. 의식적인 생각 없이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후일 잭슨 폴록의 그림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것은 다다이즘에서도 강조되었듯이 이성의 개입을 막고 우연적인 결과를 유도하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오토마티즘으로 만들어진 작품은 어떤 이성적, 논리적 해석도 거부한다.

 

살바도르 달리 - 숭고한 순간(1938)

살바도르 달리는 특히 성적인 욕망이 투영된 초현실주의적인 작품들을 내놓았다. (물론 해석은 제각각) 위 그림에서 두 개의 달걀 후라이는 여성의 가슴, 혹은 난자를 상징하며, 앙상한 나뭇가지는 다리를 벌린 여자의 다리를 연상시킨다. 또한 접시 위로 떨어지는 둥그런 막대는 남근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저 위를 기어가는 달팽이는 특유의 끈적끈적한 촉감을 연상시켜 성적인 이미지를 강화시킨다. 성적불구자이자 편집증을 앓았던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 중엔 이처럼 성적 판타지로 해석될 여지가 많은 그림들이 있다.  

르네 마그리트 - 연인들 (1928)

마찬가지로 르네 마그리트의 초현실적인 작품들도 수용자의 느낌에 따라 여러 방면을 해석된다. <연인들>에서 두 남녀가 두건을 두른 채 얼굴을 맞대고 있는 모습은 서로에게 반해 주위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초기 연애감정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이임에도 서로의 진짜 모습은 숨기고 있는 연인의 방어심리를 상징할 수도 있다. 또한 저 두건이 마치 사형수가 두르는 것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사랑은 곧 죽음처럼 고통스럽고 아프다는 의미를 갖기도 한다.

 

2차 대전 이후의 미국 미술

배경 : 전쟁을 겪은 후 유럽은 쑥대밭이 되었다. 전쟁의 횡포를 피해 예술가들은 미국으로 이주했으며, 이 전쟁으로 미국은 자본을 부풀려 최강국이 되었다. 이 와중에 미국은 유럽에서의 예술 억압(프로파간다)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었고, 상대적으로 풍부한 유럽의 문화사에 열등감이 있었다. 이런 복합적인 배경이 겹쳐 미국에선 무엇보다 자유로움을 중시하는 추상표현주의가 발달한다. 그 대표적 화가가 바로 잭슨 폴록이다.

  

잭슨 폴록

액션 페인팅 : 열정적인 퍼포먼스 자체가 예술로 간주. 작품은 그저 그 행동이 결과물일 뿐. 잭슨 폴록에게서 두드러지는 특징이며, 그의 단순히 흩뿌리는 동작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은 비이성적이고 예측불가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두드러진다.

음모론이지만, 예술문화로서 주류가 되고자 했던 미국이 정부 차원으로 평론가, 저널리스트들과 합세해 잭슨 폴록을 대대적으로 후원했다고 한다. 사실 잭슨 폴록의 생전엔 대중적인 인기는 없었다..

추상표현주의

- 원래는 1920년대 바실리 칸딘스키의 추상화를 가르키는 용어로 통용되기 시작.
- 1946년 미국에선 처음으로 <뉴요커>라는 잡지를 통해 이 단어를 사용. <또 다른 미술>을 쓴 프랑스 평론가 미셸 타피에가 아르 앵포르멜(unformal)이란 용어로 사용되었다.
- 추상표현주의는 유럽과 미국 미술의 두 전통이 합쳐져 나타난 최초의 미술 운동으로, 히틀러 지배하의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유럽 미술가들이 미국 미술가들에게 끼친 영향이 반영되어 있다.
- 고흐의 표현주의부터 칸딘스키이 추상, 마티스의 선명한 색상, 심리학적인 무의식 세계에 이르기까지 현대미술사에 등장한 다양한 경향들이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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