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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ner/Visual road

[연극] 메디아 온 미디어

 


메디아 온 미디어

장소
대학로 게릴라 극장
기간
2012.08.01(수) ~ 2012.08.12(일)
가격
일반 25,000원, 대학생 20,000원, 중고생 15,000원

영웅 이아손의 성공을 위해 그를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메디아. 후에 이아손이 자신을 배신하고 다른 나라 왕녀와 결혼하자 분노에 치밀어 그 왕녀는 물론 왕녀의 부왕까지 죽이고 만다. 그것도 모자라 오직 이아손에 대한 복수의 일념으로 자신과 이아손 사이에 낳은 두 아들까지 잔인하게 죽여버린다. 이 이야기는 이전부터 많은 미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희극으로도 만들어져왔다.  

격노한 메데이아. 들라크루아, 1862년

김현탁 연출의 <메디아 온 미디어>는 한 여인의 기구한 비극을 현대로 타임워프시켰다. 동음이의어의 반복을 활용한 <MEDIA ON MEDIA>는 신화 속 메디아의 이야기 흐름을 유지하되, 형식은 우리가 TV에서 자주 접하는 미디어 프로그램을 가져왔다. 황금양털을 가져와 영웅이 된 이아손이 현대에선 권력과 패기가 넘치는 군사 장교로 표현됐다. 메디아는 이 남자로부터 배신당한 비운의 셀러브리티다. 신화 속에서 그녀를 지켜보는 역할인 제우스, 아테나, 아레스 등은 기자회견에서 그녀에게 질문세례를 퍼붓는 기자가 되었다가 방청객이 되었다가 첩보요원이 되는 등 보조적인 역할을 맡았다.

처음 메디아가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명품 코트를 두른 채 기자회견장에 등장하는 1장에서부터, 이아손의 아버지로부터 이곳을 떠나라는 지시를 받는 고전멜로영화, 메디아와 이아손이 끝장(격투)토론을 벌이는 막장토크쇼들이 신화의 흐름대로 주욱 이어진다. 복수를 결심한 메디아가 자신의 두 아이를 죽이는 장면은 애니메이션 성우녹음 현장으로 대체되었다. 장난기가 가득한 만화 주인공 목소리로 "아이들을 죽일 것이다~"라며 천연덕스럽게 웃는 장면은 괴악한 공포를 자아낸다. 그 후일담은 아이들의 유모가 시사다큐 형식으로 설명해준다. 메디아가 후에 아테네에서 아이게네스 왕의 부인이 되는 장면은 성인채널의 포맷으로 나타나 환락적이고 외설적인 퍼포먼스가 오간다. 그리고 메디아가 이아손을 죽이는 클라이막스는 클리셰 범벅인 첩보물로 마무리된다. 

 

사실 모든 장에 나타난 프로그램들이 전부 미디어 각 장르의 관습을 차용했다. 이를 지켜보는 관객은 어느 부분에서 웃어야 할지, 어느 부분에서 분노해야할지를 이미 잘 알고 있다. 미디어에 완전히 체화된 관객은 끝장토론에서 메디아와 이아손이 격렬하게 다투는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박수를 치거나 야유를 퍼붓는다.

비운의 삶을 자기 손으로 초래한 한 여자의 절규조차 관객의 눈에선 한 편의 쇼로 전락해버린다.

만약 이것이 신화가 아닌 실화였다면, 그것조차 우리는 미디어 저편의 먼 이야기로 받아들였을 거란 생각에 소름이 돋는다. 연출가는 아마 이 효과를 노렸을 것이다.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감정들이 진실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기자회견장에서 선글라스를 쓴 채 물기 가득한 목소리로 어눌거리는 명품으로 치장한 여성. 욕설과 주먹질이 난무하는 리얼토크쇼. 담배를 깊이 들이 빨며 슬로우 모션으로 등장하는 첩보액션물. 보는 이로부터 정확히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를 노린 미디어의 관습들이 만들어낸 감정이 아닐까. 

막장 드라마에서 대놓고 화내라고 만든 장면이나 휴먼다큐에서 울라고 연출한 장면들은 이렇게 연극으로 만들어놔도 똑같은 반응을 가져올지도 모른다. 예능 프로그램을 볼 때 그것이 대본 상의 의도된 행동임을 알면서도 터뜨리는 폭소. 소셜미디어에서의 습관적인 공감.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메디아 온 미디어>는 하루에도 수십가지 미디어를 무비판적으로 흡수하는 관객들에게 한번쯤 자신이 바보가 아닌지 생각해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 메시지를 친절하게도 암전 없는 막간으로도 전달해주었다. 한 장이 끝나고 다음 장이 나오는 동안 암전도 없이 아까까지 연기하던 배우들이 관객들 앞에서 옷을 갈아입고 무대를 정리하며 재배치한다. 이것은 방금 전까지 그 장에 몰입해있던 관객들을 당혹하게 한다. 연극의 몰입을 방해함으로써 "제 4의 벽"을 만들어내는 이 막간은 관객을 연극으로부터, 아까까지 보던 TV로부터 분리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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