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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ner/Text road

[추리] 최근 읽은 추리소설 다섯권 리뷰

 

Robert McGinnis

 

1. 구름 속의 죽음


구름 속의 죽음

저자
애거사 크리스티,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출판사
해문출판사 | 2007-04-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하늘을 날고 있던 비행기에서 한 여인이 독에 의해 사망한다.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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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운항 중이던 비행기에서 발생한 살인이지만, 추리는 비행기가 착륙한 후 승객들의 배경 조사를 통해 더 넓게 나아간다. 줄거리엔 에르큘 포와로도 고전을 면치 못한다고 하지만 포와로는 예전에도 몇번 더 그랬다(...) 처음부터 범인이 밝혀지면 안되니 포와로 혼자 뭔가 알 듯 말 듯 애매한 말로 독자 애를 태운다.

애거서 크리스티 특유의 가지치기 수법이 굉장히 적은 작품이다. 사건의 큰 줄기 이외에 각 등장인물들의 얽히고 설킨 인간관계로 독자를 혼란에 빠뜨렸던 다른 작품들과는 사뭇 다르다. 덕분에 애거서 크리스티의 부비트랩을 어느 정도 피해갈 순 있지만, 그렇다고 범인이 빤히 보이는 것도 아니다. "피해자의 죽음으로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을 주목하라"는 수사의 원칙을 믿을지 말지는 독자들의 선택.

 

 

2. 라 트라비아타의 초상  


라 트라비아타의 초상

저자
도진기 지음
출판사
들녘 | 2010-09-03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 이 책은 결말 부분을 봉인해놓았습니다.현직 판사가 쓴 본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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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현직 판사가 쓴 추리소설은 어떤 건지 궁금했다. (그리고 현직판사에 작가라니,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심리가 열리는 법정에서 시작되는데, 도저히 손을 못 뗄 정도로 빠른 전개와 긴장감에 숨이 막힌다. '어둠의 변호사' 고진은 지적유희가 강한 탐정으로 마치 범인과 게임을 하듯 사건을 대한다. 진실을 파헤쳐 범인을 잡는 것이 정의 구현이라고 믿는 이유현 형사와 대조적인 부분. 고진이 살인사건 자체에 흥미를 느끼는 셜록홈즈라면, 이유현은 고진의 말에 휘둘리며 섣불리 단정짓는 헤이스팅스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셜록홈즈와 헤이스팅스가 실제로 마주칠 일은 절대로 없겠지만.

형사의 시각으로 진행되는 전개답게 사건의 초점은 트릭이 무엇이냐에 맞춰진다. 현실적으로 발생하기 어려운 트릭은 무엇이고, 해당 트릭에서 간과한 점은 무엇인지 굉장히 논리적으로 풀어낸다. 하지만 트릭에 맞추느라 각 용의자들의 심리를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라 트라비아타, 길을 잘못 든 여자. 이 작품의 제목이 왜 <라 트라비아타의 초상>인지는 소설 마지막장을 덮었을 때에야 깨달을 수 있다.

형사와 호스티스, 사채업자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다소 스테레오 타입이지만 위화감이 없다. 현직 판사로서 경험한 다양한 인물군상이 여기에 반영된 건가 싶다. 도진기의 작품을 더 읽어보고 싶다.

(근데 구입할 땐 이 책의 결말 부분을 봉인해놨다고 하던데 내가 받은 책엔 봉인따위 없었소만..)

 

 

3. 백마산장 살인사건  


백마산장 살인사건

저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출판사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08-06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밀실 트릭, 도미노 살인, 노래에 숨겨진 수수께끼, 명콤비의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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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내가 추리소설 중 가장 좋아하는 형식이 클로즈드 서클(Closed Circle)이다. 고립된 공간에서 벌어진 살인사건과 한정된 용의자들.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에서도 자주 등장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작품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떠올리면 이 개념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추리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인물이 드러나거나 결말에 뜬금없이 범인이 등장하는 건 개인적으로 흥이 떨어진다. 추리하기도 어렵고.  

<백마산장 살인사건> 역시 클로즈드 서클 형식으로, 책 소개만 읽어도 굉장히 구미가 당기는 설정이다. 물론 엄밀히 말해 외부와 완전히 고립된 공간은 아니다. 머더구스 소재를 차용한 것만으로도 기대감이 컸는데, 다소 실망스러웠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 작품인 <방과후>를 내가 재미없게 읽었던 이유가 생각났다. 사건의 실마리에 다가갈 수록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을 당시의 긴장과 흥미가 급격하게 떨어진다. 게다가 이 소설의 주된 추리가 각 방에 새겨진 머더구스 암호를 풀이하는 건데, 궁극적으로 그것이 살인사건의 범인을 밝히는 것과 별로 관련이 없다. 즉 일종의 맥거핀이지만 그로 인해 갑자기 범인이 밝혀졌을 때 뜬금없다는 부작용을 가져왔다. 지나치게 설정이 많은 감도 있다. 게다가 후반에 반전의 반전을 위한 진실이 드러나는데 개연성이 부족하다. 놀랍다는 생각보단 "그럼 여태까지 뭐했어...?"같은 기분.

 

 

4. 최후의 일격

 


최후의 일격

저자
엘러리 퀸 지음
출판사
검은숲 | 2015-06-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엘러리 퀸은 미국의 탐정 소설 그 자체이다.”20세기 최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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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엘러리 퀸의 작품은 <Y의 비극>에서도 알 수 있듯 어느 정도 문학적, 언어적 배경지식이 없으면 읽기 어렵다. 저자 엘러리 퀸의 실제 작가는 만프레드 리와 프레더릭 다네이로, 두 사촌 형제의 필명이다. 또한 엘러리 퀸은 이들의 소설에 등장하는 탐정이기도 하다. 실제로 소설 속 엘러리 퀸은 그 자신이 추리작가로서 사건을 접한 후 이를 바탕으로 책을 집필한 듯이 묘사된다. 여러모로 생명력을 강하게 부여한 인물인데 우리나라에선 다른 명탐정들에 비해 유명하지 않다. 오히려 <Y의 비극>에 나온 귀머거리 탐정 드루리 레인을 아는 사람이 더 많을 듯.

<최후의 일격>은 엘러리 퀸 작품 중 3기에 해당된다. 아직 이 작가의 작품을 다양하게 읽지 않은 나로선 <최후의 일격>을 먼저 접한 게 실수였다는 생각이 든다. 엘러리 퀸이라는 살아있는 캐릭터의 회한과 서글픈 깨달음이 이 작품에 깊이 녹아있다. 젊었을 적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던 엘러리 퀸의 믿음이, 그가 늙은 후 "그럴 수도 있겠구나"로 변하는 모습에서 문학적인 깊이가 느껴진다. 다만 내가 아직 엘러리 퀸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그의 심정을 좀 더 완전하게 느끼기엔 무리가 있다. 그의 작품을 앞으로 더 읽은 뒤에 <최후의 일격>을 복습하고 싶다.

 

 

5. 소름  


소름

저자
로스 맥도널드 지음
출판사
엘릭시르 | 2015-06-19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대실 해밋과 레이먼드 챈들러에 이은 3대 하드보일드 거장 ‘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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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미국 추리작가의 대명사 중 한 명인 로스 맥도널드의 작품을 처음으로 읽었다. 로스 맥도널드의 분신과도 다름없는 탐정 루 아처는 굉장히 현실적인 타입이다. 천재도 아니고, 개인적인 유희 때문에 사건을 맡지도 않는다. 체스의 달인이거나 악기를 수준급으로 연주하는 실력도 없다. 오히려 돈을 대줄 의뢰인을 찾기 위해 발품을 파는, 다분히 현실적으로 당연한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생각해 보면 탐정이라는 직업도 결국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지, 진실을 찾는 데서 쾌감을 얻거나 범죄수법에 감탄하며 기꺼이 자기 주머니를 소비하는 탐정은 문학 속에서나 존재할 것이다.

로스 맥도널드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전후 미국 가정의 붕괴는 이 시기에 나온 영화들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작품 말미 해석에서 예로 든 알프레드 히치콕의 <사이코>(1960)도 그렇고, 이후 70년대 <텍사스 전기톱 대학살>(1974)이나 <왼편 마지막 집>(1971) 등 미국 공포영화에서 나타난 중산층 가정의 모습은 기존의 권위를 상실한 가족구성원과 윤리의 딜레마를 보여준다. 요컨대 로스 맥도널드의 <소름> 역시 '괴물은 가정에서 탄생한다'는 주제의식을 드러낸다. (참고로 <소름>은 1964년작이다)

작품 해석에도 나와있듯 <소름>은 어른들만의 이기적인 사정으로 건강한 성장을 하지 못한 가련한 젊은 세대를 그리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이 생각나는 부분이다. <리어왕>에서 에드거는 동생 에드먼드가 아버지에게 자신을 중상모략하자 일부러 정신병자 행세를 하며 목숨을 연명한다. 아버지의 판단 실수로 인해 건강한 어른으로서의 행세를 거세당한 에드거는 <소름>의 돌리와 닮았다. 또한 어른들의 사정, 부모의 비밀이 어릴 적 트라우마가 되어 비운의 죽음을 맞는 헬렌은 <리어왕>의 막내딸 코델리아의 최후를 떠오르게 한다.

단지 재미로 읽는 추리소설이라기엔 문학성이 너무 높은 작품이다. 미국 추리소설을 더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