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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ner/M to M

[특집] 우먼 인 호러

WOMAN IN HORROR

공포영화도 장르에 따라 다양하게 나뉘지만 어떤 호러물이든 절대 빠져선 안 되는 요소가 있다. 바로 여자다. 피칠갑을 한 시체 앞에서 스크린을 가득 메우는 비명소리가 남자라면? 어둠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섬뜩한 귀신이 남자라면? 관객이 느낄 공포를 고려했을 때 공포영화에는 엄연히 '성차'가 존재한다. 우리는 관습적으로 여자의 비명소리와 섬뜩한 귀신 분장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미 자연스럽지만 사실 공포영화에서 '여성'은 몇몇 영화들을 통해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는 장치로 작용해왔다. 이것은 문화권마다 다른 차이를 보이는데, 지금까지 본 공포영화 내공을 살려 공포 영화 속 여성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hello, sidney? 그만 좀 불러...

 

한국 공포영화 속 여성상의 변화  

월하의 공동묘지 포스터

 

'월하의 공동묘지'(1967)는 후에 나오는 '월녀의 한'(1980), '여곡성'(1986) 과 같은 여인의 '한'을 다룬 영화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서슬 퍼런 시어머니와 교활한 식모에게 괴롭힘만 당하다가 억울한 누명으로 자살한 여인이 자신의 어린 아들을 지키기 위해 원혼이 되어 나타난다. 무덤이 두 쪽으로 짝 갈라지며 섬뜩한 표정의 여인이 나타나는 장면은 지금 보면야 우습지만, 당시엔 센세이션을 일으킬만한 충격적인 공포였다. 같은 맥락들의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적인 주제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엎드려 사는 여성의 한이다. 정조와 인내가 미덕인 이 여성들은 복장 터지는 대우를 받으면서도 누군가의 '부인'으로서, '며느리'로서 낮은 위치를 감수한다. 이들의 억울함은 현실에선 해결될 수 없으며, 오직 원혼이라는 형태로 나타나 가해자들의 참회가 유일한 씻김굿일 뿐이다. 

 

여고괴담2 - 메멘토 모리

 

'여고괴담'(1998)이 등장하면서 한국 공포영화가 활기를 찾게 된다. 이 영화는 한국 교육현장의 현실과 호러가 조화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왜 하필 무대를 여고로 정했느냐 따져본다면 역시 공포영화 속 여성이라는 장치가 공포를 극대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한창 밝게 빛나야 할 학생들이 선생과 학생이라는 관계에서 차별 당하고 매질에 무서워하는 장면들은 남고보다 상대적으로 여고가 더 설득력이 있어보인다. 이후에 나온 '여고괴담2-메멘토 모리'는 레즈비언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가져왔다. 10대의 불안정한 정서와 동성애가 혼합되어 좀 더 여성적인, 여성만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

 

 

 

한국 공포영화 속 여성상이 획기적으로 변화를 맞게 된 영화는 '분홍신'이 아닐까 싶다. 그 전까지 (여고괴담 이후의) 공포영화란 '폰', '가위', '해변으로 가다', '찍히면 죽는다' 등을 봤을 때, 여성이 영화에서 딱히 중요하게 차지하는 의미는 없었다. 여고괴담처럼 여고생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분신사바'라든가 언더그라운드의 트렌드를 반영했던 '인형사' 역시 여주인공의 최대한 크게 뜬 두 눈망울이 주는 공포만 있었을 뿐, 여러가지면에서 단점을 드러내 흥행에도 참패를 했다. 여기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모두 챙겨봤던 나(...)

영화 분홍신

김혜수가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분홍신'은 여성의 욕망을 정면으로 다뤘다. 여기서 여주인공은 누군가의 부인도, 며느리도 아니다. 남편의 외도를 목격하고 딸과 함께 집을 나오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의 엄마도 아니다. 김혜수는 그저 남자 앞에서 예뻐보이고 싶고 유혹하고 싶은 개인적인 존재로 등장한다. 외모지상주의라는 단어가 점점 보편화되던 시기와 맞물려 이 영화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향한 욕망과 지나친 광기를 보여줬다. 분홍신을 빼앗기 위해 심지어 자기 딸의 뺨까지도 때리는 장면은 '월하의 공동묘지'에서 원혼이 되어서도 아들의 안전을 지켜주고자 했던 여성과 대조적이다. 이어서 나온 '신데렐라' 역시 성형수술을 소재로 외모에 대한 집착이 모티프다. 두 영화 모두 호러의 측면에선 아쉬운 평가를 받았지만 공포영화에서 여성을 이런 식으로 보여줄 수도 있다는 점에서 기억에 남는 영화였다. 여기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둘 다 챙겨봤던 나(...)

 

헐리우드 '최후의 그녀'

 

영화 하우스 오브 왁스

 

주로 원혼을 다루는 아시아 공포영화와는 달리 서양은 예전부터 슬래셔나 고어와 같은 스플래터 무비가 인기를 끌었다. 헐리우드야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 '호스텔', '스크림' 등 워낙 이런 영화들이 성행해왔지만 최근 들어 주목받은 프랜치 익스트림 무비('엑스텐션', '마터스' 등)를 보면 프랑스도 점점 극단적인 고어 무비가 떠오르고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 역시 '여고괴담5'도 그렇고 '스승의 은혜'를 보면 점점 썰고 자르는 공포영화들이 전면적으로 많아지는 경향이 보인다.  

영화 스크림4D

 

 

피와 살점이 튀고 신체를 도륙내는 서양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여성이 등장한다. 헐리우드를 중심으로 했을 때 공포영화에서 등장하는 여자주인공을 "최후의 그녀"라고도 말한다. 영화 초반에 등장했던 모든 떨거지들이 전부 살인마에게 난도질 당한 후에도 끝까지 살아남는 "최후의 그녀"는 헐리우드 공포 영화의 전통적인 클리셰다. 이 "최후의 그녀"들에겐 일관적인 특징이 있는데, 그녀 주변 또래 친구들은 전부 마약에 취해있거나 성적으로 자유분방하거나 일탈적인 행위를 서슴지 않는 하여튼 고삐 풀린 망아지같은 데 비해 오직 "최후의 그녀"는 성적으로 순결하고, 똑똑하고 성격도 좋다. '스크림'이나 '호스텔2',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 '하우스 오브 왁스' 등에서 등장하는 여자주인공을 떠올리면 몇 가지 공통점으로 추려지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80년대부터 두드러졌던 이 클리셰는 "70년대 헐리우드 영화사를 지배했던 자유주의 물결에 대한 보수우익의 반격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영화에 대한 13가지 테마 - 한상준 외 지음 中 >

 

 

공포영화의 단골인 여성의 째지는 비명소리, 긴 머리를 잔뜩 늘어뜨린 원혼의 모습 등은 어쩜 이렇게 매번 질리지도 않을까. 사골국 우려먹듯 쓰이는데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비명소리의 의미도 점점 변화한다. 한국영화에선 언제나 사회적 관계에서 객체로서 행동했던 여성이 이젠 자기 욕망을 거리낌 없이 추구하는 개인적 존재가 되었다. 한편으론 자기 욕망을 추구한 여주인공이 종래엔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된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생산할 수도 있다. 헐리우드는 "최후의 그녀"를 활용해왔는데, 이는 80년대 보수우익의 반격으로 해석할 수 있으나 현대에 와선 스테레오 타입에 안정을 느끼는 사람들의 심리를 반영한 결과로도 볼 수 있다. 즉 모든 영화들을 포괄할 수 있을만큼 절대적인 법칙은 없다. 사상과 철학이 지배하고 전복되기도 하는 뒤죽박죽의 공간이 바로 영화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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