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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ner/M to M

[한국영화] 남영동 1985

 


남영동1985 (2012)

Namyeong-dong1985 
9.2
감독
정지영
출연
박원상, 이경영, 명계남, 김의성, 서동수
정보
드라마 | 한국 | 106 분 | 2012-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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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봐야하는 영화의 불편함

언제부턴가 현실 사회와 밀접한 영화가 나오면 그것이 픽션이라도 '꼭 봐야하는' 수식어가 붙는다. <도가니>, <부러진 화살>, <다카키 미사오 전성시대> 등 올해 유독 한국사회를 재구성한 영화들이 눈에 띄었다. 영화는 아무래도 시청각적인 스펙터클과 긴장을 고조하는 플롯이 있기 때문에, 뉴스로 접하는 것보다 영화를 통해 보는 것이 대중적인 공분을 일으키기엔 적절할지도 모른다.  텍스트는 행과 행 사이의 맥락을 소화하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하지만 영상 이미지는 수용자가 그저 감독이 의도한 앵글과 컷과 컷을 눈으로 보며, 사건을 보다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해준다.

어떤 선량한 의미가 있든지간에 문화 콘텐츠라면 비평을 피할 수 없고, 피해서도 안될 것이다. 문화는 항상 자유로운 비평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 탓인지, '꼭 봐야하는' <남영동 1985>가 개인적으로 불편했다. 고 김근태 전 복지부장관의 수기를 바탕으로 했지만 이 영화는 어디까지나 영화적 장치로 재구성된 픽션이다. 어떤 정치적 옳음을 지향하든 '영화'라는 콘텐츠로 제작된 이상 비평의 성역화는 있을 수 없다. 다큐멘터리도 마찬가지다. 조작이 없는 영상일지라도 각 장면을 어떻게 조각내서 어디에 배치할지는 감독의 목적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꼭 봐야하는' 영화가 등장했을 때, 그 영화에 대한 비평을 아예 배제하는 분위기는 경계해야 할 것이다. 콘텐츠를 지적한다고 해서 그 콘텐츠의 모티프가 된 현실까지 부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남영동 1985>는 아쉬운 영화였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몇 가지 의문점을 갖고 있었고. 홍대 상상마당에서 열린 감독 &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 의문이 해소되길 바랐지만, 이 영화가 갖고 있었던 좋은 본질이 감독의 욕심 때문에 흐려졌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과유불급의 영화

<남영동 1985>는 '고문'이라는 충격적 소재를 통해 7,80년대 군부독재의 참상을 보여준다. 국가가 암묵적으로 동의한 폭력으로 자유로운 사상이 짓밟히고 개인의 삶 자체가 송두리째 파괴된다. 초반만 하더라도 흥정에 넘어가지 않던 저항정신이 후반부에선 "뭐든지 적을게요, 말씀해주세요"로 변하는 장면을 보며, 관객은 국가의 폭력이 한 사람의 고결한 육체적, 정신적 세계를 무자비하게 난도질하는 상황을 목도한다. 이 영화가 실제 고문 피해자의 수기를 바탕으로 했고. 또 마지막에 실제 고문피해자 분들의 인터뷰가 삽입된 것을 고려했을 때, <남영동 1985>가 그 당시를 재조명함으로서 이들의 삶은 아직까지 온전히 복구가 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려고 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유의미하다.  

문제는 국가보안법을 다루는 방식과, 감독이 의도한 현실과의 연계성이다. 참여정부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자 했지만 그것이 결국 헌재의 합헌 판결을 받고 실패한 사실은 7,80년대 군부독재와 무관하게 달리 비판받아야 한다. 열린우리당이 국회의 과반석을 차지하고 있었던 상황이 무력했고. 정권을 잡고도 그런 의지를 완수하지 못한 비판은 참여정부의 몫임에도, 이 영화는 시종일관 독재정권을 겨냥한다. 하지만 국보법의 폐해는 7,80년대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경계도시> 시리즈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송두율 교수는 국보법으로 인해 2003년에도 국가추방을 당했다. 참여정부가 이러한 국보법 피해의 복구조차 실패했는데도 그 현실은 생략한 채 당시 참여정부의 '의지'만을 보여준 것은, 국보법 문제를 7,80년대 정권에만 묶어둘 우려를 낳는다.

또한 <남영동 1985>를 보고 투표를 잘 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이 영화는 대선용 영화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7,80년대 고문의 피해자는 지금의 야권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여권이 대선에 승리한다고 해서 군부독재가 재현되는 것도 아니다. 제대로 된 투표를 하겠다는 관객평을 보고 보람을 느꼈다는 감독의 말은 이 영화가 다분히 정치적 의도를 담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참여정권 시절에도 죽어나간 사람이 없지 않았다. 그 때도 과격시위는 존재했고, 그로 인해 사망하거나 자살한 사람도 있었다. 독재정권 시기를 지금과 연계해 관객에게 어떤 정치적 선택을 요구하는 것이 감독의 의도라면. 그것이 반영된 영화는 사회에서 잊혀진 고문 피해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영화가 아니라, 시각적 폭력이 준 충격과 슬픔을 이용한 정파적 영화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리마인딩의 한계

정치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고문 피해자들이 현재 어농업 등에 종사하며 근근한 삶을 사는 모습은 고문을 재현한 장면 이상으로 괴롭다. 세상이 또 언제 뒤집힐지 몰라 아무 말도 못하겠다는 인터뷰를 보며. 아마 이 영화의 본질은 많은 사람들이 몰랐던 이들의 트라우마를 대중적인 수단으로 조명했다는 정도가 좋을 것 같다. 그 이상의 이야기를 하기엔 부족하다. 사실 요즘 나오는 리마인딩 영화들을 보며 드는 생각이지만, 과거를 재현하는 콘텐츠를 만났을 때 관객이 느끼는 순간적인 분노, 울분 등의 감정은 답답한 현실의 맛만 본 채 어느 순간 공중분해 된다. 그리고 다음 콘텐츠가 나올 때까지 관객의 머릿속에 침잠한다. 하지만 한계가 있다고 해서 그것을 반드시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영화의 의도가 애초에 리마인딩에 맞춰져 있다면, 그건 그거대로 콘텐츠로서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 고선웅 연출가의 <푸르른 날에>처럼 과거 재현의 그 이상을 말하려면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푸르른 날에>의 경우 5.18 민주항쟁을 겪은 두 남녀가 세월이 흐른 뒤 과거의 자신과 화해하는 과정에 집중했지만, <남영동 1985>는 너무 많은 걸 담느라 정말 중요한 초점은 흐려졌고 결론은 투표를 잘하자..로 끝나버린 느낌이 든다.

 

 

딴 생각이지만 그 당시 고문실에서 고문을 돕는 말단이었던 사람들은 지금 이 영화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영화를 보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자기 직업이 나쁘다고 생각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영화에서 주인공 김종태가 허위진술을 부정할 때, 고문기술자 이두한은 감히 정권을 모욕했다고 화를 내지만 말단들은 자기네 승진이 어렵게 됐다며 욕을 한다. 이 사람들을 당시 정권과 똑같은 선상에서 비난하는 것이 과연 맞을지, 그렇다고 이 사람들의 행동을 마냥 시대적 상황으로 감싸줄 수 있을지는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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