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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ner/M to M

[한국영화] 신세계


신세계 (2013)

8.5
감독
박훈정
출연
이정재, 최민식, 황정민, 박성웅, 송지효
정보
범죄, 드라마 | 한국 | 134 분 | 2013-02-21

1. 연초부터 바야흐로 한국영화 전성시대다. <베를린>에 이어 <7번방의 선물>이 흥행 질주를 하더니 최근에 개봉한 <신세계>가 새로운 티켓몰이를 하고 있다. 이제 곧 개봉될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도 상반기 후발주자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신세계>는 성인등급에도 불구하고, 정평이 난 배우들의 조합과 전작 <부당거래>의 시나리오를 쓴 감독의 작품이란 타이틀로 연일 호평을 받고 있다. 그런데 너무 기대를 했던 탓일까. 한치의 예상도 빗나가지 않는 전개와 연출이 영화를 보는 내내 지루함을 느끼게 했다.

많은 사람들이 <신세계>를 보고 <무간도>나 <대부>를 떠올렸지만, 사실 이 영화가 가장 근접하고자 했던 영화는 <이스턴 프라미스>일 것이다. 비고 모텐슨이 러시아 마피아에 투입된 언더커버로 나온 이 영화는, 양극단에 두 발을 걸친 남자의 착잡한 심리를 정교하게 묘사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스턴 프라미스>가 정적인 반면 <신세계>는 동적인 요소가 더 강했다고 할까. 단언하건데 <신세계>는 앞서 언급한 세 영화 중 아무것도 뛰어넘지 못했다.

이스턴프라미스

이자성이 자신의 세계를 조종하는 공권력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 건지. 혹은 자신이 속한 진짜 조직에서 느끼지 못한 '정'을 정청이 주었기 때문인지도 애매하다. 사실 후자의 이유가 영화에서 더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관객들도 그렇게 느끼는 평이 대세다. 하지만 정말 후자가 이유라면 영화가 하고자 했던 말이 고작 이거였던가하는 허탈감이 남는다. 물론 뻔한 메시지를 어떻게 그럴듯한 연출로 보여주느냐도 중요하지만, 이 영화는 저 메시지 하나를 보여주기 위한 전개조차도 고지식하다.

결론적으로 <신세계>는 이정재가 연기한 이자성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았다. 오프닝에서 프락치를 색출하기 위해 잔인한 짓도 서슴지 않는 이자성을 보며, 우리는 왜 이자성이 그토록 언더커버를 그만두고 싶어하는지 알 수 없다. 뻔한 전개가 흐를 수록 이자성의 비중이 영화 전체를 책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건 배우의 연기력 탓인지 아니면 애초에 그 정도만 요구한 것인지, 이자성이라는 인물은 갈수록 평범해진다.

<무간도>에서 유덕화가 결국 양조위의 신원파일을 삭제하고 의자에 등을 누인 채 복잡한 표정을 짓는 그 장면. <이스턴 프라미스>에서 비고 모텐슨이 사랑하는 사람을 보낸 뒤 이제 곧 태풍이 불 조직에 다시 돌아가는 장면. 이것을 이자성에게도 보여줄 여유가 있었다면, 그가 골드문 회장자리에 앉아있던 그 모습이 더 인상깊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이자성의 심리가 제대로 드러난 장면은 정청의 시체 앞에서 황망한 얼굴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컷 하나 뿐이다. 이마저도 깊이가 부족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베를린>을 보고 영화가 장르적 공식을 따라가는 것이 과연 수작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이 의문은 <신세계>에게도 똑같이 되묻게 된다. <베를린>은 재미있었고 <신세계>는 재미 없었다. 영화평을 이렇게 하는 거야 쉽지만 굳이 이유를 찾아보자면, <베를린>은 그 많은 첩보물 클리셰를 따라가면서도 절대 간과해선 안될 깊이는 빠뜨리지 않았다. 이와 달리 <신세계>는 똑같은 장르적 수순을 밟아가기만 할 뿐 정작 임펙트가 필요한 부분은 겉모양만 훑듯 지나가버렸다.

 

2. 1에서 너무 혹평을 했지만 <신세계>가 그렇게까지 망작은 아니다. 정청이 엘리베이터에서 칼춤추는 장면은 다시 한번 보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사실 이 장면은 사전에 미리 맞춘 동선과 매우 달랐다는데, 피가 너무 미끄러워서 사전연습과 달리 배우들이 허우적대며 연기해야 했다고. 그런데 그 모습이 오히려 더 실감났다.

에필로그 '6년 전 여수'는 정청과 이자성의 관계를 확실하게 못박아준다. 여기서 이자성이 마지막에 보여준 웃음은 이 영화가 관객에게 주는 최후의 임펙트다. 단순히 형제애라고 말하기 힘든 느낌을 받았는데, 갑자기 떠오른 문구가 "악마를 보았다"였다. 이자성 본인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그는 이미 조직세계를 즐기고 있었다는 의심이 드는 순간 영화가 끝나버린다. 어떤 직업에 대해 마땅히 요구하는 윤리나 소명의식이 사실 어디까지나 이상적일 뿐 ,당연히 체화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이자성의 본래 직업은 경찰이었고 강과장 및 경찰 수뇌부는 그가 당연히 경찰의 소명의식을 갖고 있으리라 생각했겠지만. 사실 직업윤리는 개인의 경험에 얼마든지 좌지우지 될 수 있는 빈약한 '소망'이라고 보는 게 적절하다. 조직은 조직원이 개인의 경험으로 직업적 소명을 이탈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케어를 해야 하겠지..그런데 영화도 그렇고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아무 동기부여도 주지 못하면서 워커홀릭을 요구하는 회사가 부지기수다. 현실은 이자성처럼 제대로 '나가리'를 날릴 수 없겠지만...

   

3. 이경영은 이제 어느 영화에 나오든 이근안으로 보인다.

 

4. <베를린>에서도 그렇고 <신세계>에서도 여성의 역할은 굉장히 한정적이다. 남자 배우들의 역할만큼이나 정형화되어있고, 역할 본연의 매력을 보여줄 기회도 제한되어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남성영화 속 조미료에 그친다고 할까.

 

5. 한적한 차도에서 신호가 바뀌고 승용차가 바퀴 좀 굴리다가 옆에서 돌격한 트럭에 끔살당하는 장면은 이제 좀 지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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