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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ner/M to M

[스릴러] 세르비안 필름

 


<소돔, 120일>과 함께 고어물의 양대산맥으로 언급되는 영화 <세르비안 필름>은 좀 더 강력한 수식어가 필요하다. 고어물이되 "보기 힘든", 혹은 "보지 않았으면"의 설명이 추가되어야 한다. 단순히 잔인한 시각적 폭력이 난무하는 영화는 넘쳐난다. 오히려 요즘은 <세르비안 필름>보다 더 수위가 높은 고어물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충격적인 이유는 비단 신체 훼손 뿐만 아니라, 주인공이 겪는 일련의 상황이 구역질 나기 때문이다. 구정물보다 더러운 어떤 기류가 영화 내내 계속되고, 나아가 영화 속 세계 전체를 히스테릭하게 만든다. 한편 <세르비안 필름>은 제목 그대로, 세르비아의 어떤 현실적 부분을 비관적으로 냉소하고 있다. 그 어떤 영상물도 광기가 감도는 사회적 분위기를 이렇게 표현할 순 없을 것이다.


포르노. 그러나 쾌락은 없다

근친, 시간, 태아 강간...이외에도 성기로 눈구멍을 뚫어서 죽이는 장면 등 <세르비안 필름>의 큰 화두는 섹스와 살해다. 왕년의 포르노 배우였던 '말로스'는 결혼한 뒤 은퇴하면서 빈곤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그에게 한 감독이 찾아와 거액의 영화를 제안하는데, 이때 감독이 하는 말이 가관이다. 

"우리가 팔려는 건 포르노가 아니라 삶 그 자체에요. 희생자의 삶. 사람들은 그걸 보려고 돈을 내요. 희생자는 돈이 되거든요. 가장 비싸게 팔리죠. 희생자는 가장 고통 받아요. 우린 희생자에요. 당신, 나, 이 나라가 희생자죠."

그러면서 보여주는 것이 바로 태아 강간 영상이다. 직접적으로 나오진 않지만, 이제 막 임산부의 몸에서 나온 태아의 자지러지는 비명은 그것을 대충 파악할 수 있게 만든다. 사실상 영화 속 감독이 열변을 토하는 이 장면이 <세르비안 필름>을 통해 진짜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주제일 것이다. 감독 본인은 이것이 정치적인 영화가 아니라고 부정했지만...요컨대 희생자, 혹은 고통받는 자를 보며 쾌감을 얻는 사람들로 인해 경제가 활성화된다는 것. 영화 속 감독은 자신들이 '경제의 기둥'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그렇게 돌아가는 사회가 과연 정상일 수 있을까. 말로스는 감독에게 대꾸한다. "우리는 희생자가 아니에요. 어리석을 뿐이죠."

<세르비안 필름>은 섹스를 주된 키워드로 활용하고 있지만, 거기엔 폭력만 있을 뿐 쾌락은 없다. 폭력과 쾌락이 정확히 양분화될 수 있는 개념이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하다. 적어도 이 영화에서 쾌락은 없다. 영화 속 감독은 '희생자의 삶'을 팔기 위해 주인공 말로스를 철저한 계획 하에 희생자로 만들어간다. 만약 여기서 관객이 일종의 묘한 쾌감을 느낀다면, 이는 그가 어리석고 비정상적인 사회의 구성원임을 반증한다.



세르비아와 <세르비안 필름>

그렇다면 세르비아는 대체 어떤 나라인가. 영화 한 편으로 그 나라의 모든 것을 결정짓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다만 이 나라의 역사적 상황을 되짚어봄으로써, <세르비안 필름>의 난해한 맥락을 어느정도 이해할 순 있다. 세르비아는 발칸의 화약고라고 불리는 코소보를 성지로 여기고 있다. 14세기 무렵 세르비아 왕국의 중심지였던 코소보는 현재 세르비아의 자치주이며, 알바니아계 이슬람교인이 90%다. 세르비아는 세르비아 정교를 믿는다. 세르비아 국가로부터 독립하고자했던 코소보는 90년대 중반부터 테러를 자행해왔고, 이에 세르비아(유고연방)는 군대를 동원한 이른바 '인종청소'를 감행한다. 이로 인해 대략 80만 명이 추방당하고 주민 1만 명이 학살당했다.

코소보 인종청소 외에도 보스니아가 신유고연방으로부터 독립하려고 하자 '보스니아 내전'까지 일으킨 전적 때문에, 세르비아는 국제사회로부터 숱한 비난을 받았다. 사실 세르비아와 코소보가 평화 협의를 시작한 것도 올해 1월에서야 성사된 일. 이러한 역사를 되짚어봤을 때 <세르비아 필름>이 비판하고자 한 어떤 정신적 광기. 역사의 후유증을 앓는 사회의 어떤 지점이, 음지문화인 포르노 산업을 통해 나타나고 있음을 짐작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렇게 해석하고 보면 이것이 비단 세르비아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폭력의 역사는 국가를 막론하고 어디든 있어왔고, 사회 전체에 암처럼 파고든 광기는 다양한 계기를 통해 드러나기도 한다. 


<소돔 120일>을 쓴 사드에 대해 존 필립스는 이렇게 해석한다. 

...사드가 제기하는 이슈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시사성이 크고 윤리적으로도 중요해진다. 본인은 덕성에 기인한다고 주장하는 행동의 악한 결과를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가? 바로 이 질문은 비윤리적 행동을 토대로 하여 윤리적 국가를 설립하고자 하는 혁명에 곧바로 결부된다. 그 비윤리적 행위란 구체제에 대한 처벌과 그것이 이룬 업적을 제거함과 동시에 장래에 군주제가 또 출현할 위험을 사전에 없애기 위해 국왕을 시해하고 그에 뒤이어 귀족 수천 명을 처형하는 데서 되풀이된다. 그런 극단적 상황에서는 선과 악, 덕성과 악덕이 사실상 판단 불가능한 것이 되고 만다. 

- 존 필립스, <How to read 사드> p. 126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어떤 불편한 기류를 나타내기 위해, <세르비안 필름>은 포르노그라피를 끌어들인다. 이미 포르노 수위를 넘은 비윤리적 행위가 국가의 경제 기둥이 된다는 영화 속 감독의 궤변은 존 필립스가 분석한 사드의 문제제기와 맞닿아 있다. 또한 이 영화와 사드와의 결부는, <세르비안 필름>이 단순히 포르노 산업의 이면을 극단적으로 비판했다는 평에만 머물러 있기 아까운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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